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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그 어떤 핍박 속에서도 난 책 사 볼란다...ㅋ



밤을 꼬박 세우고 어제 아침 6시가 되어 침대에 누웠다. 누우면 바로 잠드는 스타일이 아니고 뒤치닥거리다가 잠드는 인긴이라 7시가 다 되어 잠이 든 것 같다. 모임에 참석해야 할 일정이 있어서 2-3시간만 자고 일어나야지 했는데, 결국 12시가 다 되어 일어나 버렸다. 일어나 보니 부재중전화가 왔었다. 친구한테 미안하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친구에게 문자보냈다... ㅡ.ㅜ

그렇게 일어나니 큰 누님께서 점심 같이 먹자고 기숙사 가까이로 오신단다. 그래서 또 부랴부랴 주섬주섬 챙겨입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먼저 와 계시던 누님을 모시고, 술을 먹은 것도 아닌데 얼큰한 국물이 생각나서, 부대찌게를 먹으로 갔다. 근데 먹고 나니 어제 하루 종일 속이 이상했다.

예전에 엄니께서 돌아가시기 몇 해 전에 나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다. “엄마 죽고, 엄마 보고 싶으면 큰 누나 보러 가는거야”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뭔 말씀이시지?” 했는데, 요즘 우리 큰 누님 보면 울 엄니 말씀이 뭔지 알 것 같다. 얼굴 생김새 하며, 웃음 소리나, 말하는 스타일이나, 심지어 욕하는 것까지 똑같다.

울 엄니도 한 입심하시는 분이라 나한테 욕하는 거 누가 집 밖에서 들으면 장난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울 큰 누님 나만 만나면 울 엄니 나한테 하셨던거나 뭐 똑같다. 특히 부모님 세상 떠나시고는 만나기만 하면, “뭐 먹고 살래? 계획은 가지고 사니? 맨날 책들만 보고 살래?” 등등. 아~ 잔소리 장난 아니다. 어디 잔소리만 하시나? 욕도 장난 아니고. 이제 하도 들어서 면역 생겼다...ㅋ

하여간 그렇게 부대찌게 먹고 가까운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 잔 하며 이것저것 이야기도 하고. 큰 누님 또 넷북 이상하다며 들고 오셨는데, 처음에 넷북 들고 오셨다고 하셨을 때는 누님 사용 안 하다가 또 이용법 까묵어서 그랬겠지 했는데, 막상 구동시켜보니까 진짜 좀 이상하다. 아무래도 포맷을 새로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커피까지 마시고 헤어지며 누님 지하철 타시는 거 보고, 기숙사를 향해 전동스쿠터를 몰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참 동안 가지 못했던 헌책방에를 무작정 들어갔다. 다른 책은 모르겠지만, 문학책이나 특히 오래된 사회과학 책은 이 헌책방에서 모두 구입하는 단골 서점이 있다. 자주 가는 곳이라 주인 아저씨도 나를 위해 사회과학 서적이 들어오면 챙겨놨다가 소개시켜 주시곤 한다.


갑자기 들어간 서점 입구에 신기한 책들이 눈에 확 띠었다. 『알퐁스 도데 작품선』, 『양철북 I, II』, 『롤리타』가 한꺼번에 한 줄에 쭉 쌓여 있지 않은가? 첫 번째 도데의 책은 출판사를 못 들어봤지만, 번역한 사람이 그래도 신뢰할 만해서 구입했고, 나머지 3권은 굴지의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판된 것이라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구입했다.

다들 너무 유명한 책들이 아닌가? 제일 먼저 눈에 띠이기도 했지만, 사실 도데의 책을 보는 순간, 아련하게 중딩 때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별」이라는 작품이 번쩍 떠올라 입가의 미소를 지으며 “어찌되었건 구입하자”고 속으로 외치며 집어들었다. 나머지 책들도 워낙 유명한 책들인데, 뭐 읽는 둥 마는 둥 했던 책들이라 이참에 구입해서 읽어보자는 생각에서 덜컥 구입해 버렸다.

그렇게 문학책들을 골라놓고 나서는 “그래도 여기 온 목적이 사회과학 서적들 구입하려고 했던 것인데...” 하는 생각이 들어 움직일 때마다 삐그덕 소리를 내는 나무로 된 목발을 짚고 서점 또 다른 한 구퉁이로 갔다. 그래서 고른 책들이, 『전지구적 변환』, 『영상 이미지 읽기』, 『정치경제학 사전』 이렇게 3권이다.


한참 머리가 핑핑 돌아갈 무렵, 비디오 테이프 씹힐 때까지 보았던 일본 애니메이션, 속칭 저패니메이션(Japanimation), 특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붉은 돼지」, 「천공의 섬 라퓨타」, 「공각기동대」, 「에반게리온」, 「카우보이 비밥」등의 작품들과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이미지만 소비하며 산다”고 일갈했던 프랑스 철학자 쟝 보드리야르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는 “이제 내 공부의 모든 힘은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에 쏟는다”고 다짐한 이후로 실재로 내 공부의 가장 큰 부분은 미학이론과 이미지 속에 숨겨진 이데올로기 읽기로 경도되어 있다.

그러니 이런 책이 서점에서 눈에 보일 수밖에. 그리고 『전지구적 변환』은 사실 원저작자들도 모르고 책 자체를 몰랐었다. 그런데 이 책을 번역하신 교수님의 이름은 익히 잘 알고 있었고, 그 분의 책들도 거의 읽어왔던 터라, 특히 인권 쪽의 책들은 읽었던 터라, 그냥 구입하기로 생각하고, “그래도 어떤 책인가?” 하고 제일 뒤에 위치해 있는 “옮긴이의 말”을 들춰보니 이런 구절이 있다.

20세기 중반에 나온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명저, 『거대한 변환』(The Great Transformation)의 지성적 상속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지구화에 대한 기존의 저서들과 비교를 거부하는 기념비적인 저작이다. 전모를 파악하기가 힘들기로 이름난 지구화 개념을 학술적으로 완벽하게 포착하는 데 성공한 역사·사회학적 작업의 결정(結晶)이기 때문이다.


헉! 책의 옮긴이를 보자마자 사려고 맘 먹고 있었지만, 이 엄청난 찬사를 보고서도 구입하지 않으면 “난 정말 무지랭이가 될 것은 불안감”이 몰려와 “그래, 헌책이지만 두께나 책 상태를 보아하니 가격 좀 나가겠는데” 하는 또 다른 불안감이 몰려왔지만 눈을 질끔 감고 구입하기 위해 손에 들었다...ㅋ

그리고 마지막 책인 『정치경제학 사전』은, 요즘 하고 있는 생각이지만, 개념이라는 것이 누구에 의한 것이냐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개념에 충실하려는 생각에서 구입한 책이다. 적어도 누가 어떤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그 개념을 사용하고 유포시키느냐를 추척하는 것이 공부의 핵심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에게서 배운 것이다. 처음에 푸코의 방법론을 공부하면서 얻었던 해방감이란!

어쨌든 한 보따리 되는 책을 사들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이 기쁘기도 했지만, 또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지난 금요일에 기숙사 내 방에 산적해 있던 책들을 정리해 준 후배 자슥이다. 그날 책 정리가 마쳐 갈 무렵, “책이 없어지니까 허전하다”고 내가 한 마디 했더니, 대뜸 “그렇다고 또 책 사다놓고 쌓지마요... ㅡㅡ+” 정말 기숙사 돌아오는 길에 이 자슥 생각이 났다...ㅋ

그래도 별시답지 않지만, 공부한답시고 동네방네 떠들고 돌아댕기는 놈이 책없이 지낸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자슥 잔소리야 또 들으면 된다는 각오를 하며 즐겁게 돌아왔다. 어쨌든 그 자슥 모르게 책들 사이사이에 잘 쟁겨놔야 할텐데...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