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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특별할 것 없는 일요일 늦은 밤에...


땅에 것이 아닌 저 위 하늘에 있는 것을 “초월”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처음에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는 이것에 참 매료되어 살았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원래 분위기가 그런 곳이니 제게도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시작하고 새로운 책들을 접하면서 해야 할 이야기는 저 위 하늘의 것들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지금 발을 딛고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것이 맞고 어느 것이 틀렸다는 식의 양자택일식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다만 어느 것이 자기 몸에 맞는 것이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생각하고 책을 읽어봐도 제게는 이 땅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몸에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 위의 것이 쓸모 없거나 허구이고 거짓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삶의 내밀한 곳에서 일어나야 할 일들이고 그것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모두에게 보편 타당한 것이고 누구나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개인의 차원에서 경험하고 경험해야 할 것들이지 누군가에게나 추구되어야 할 공통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제게 “숨쉬다” 혹은 “생명”이라는 단어는 저 위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일어난 일들에 관한 것입니다. 실제로 제 삶에서 사용되어 지고 손으로 혹은 몸으로 느껴질 수 있는 단어이고 용법입니다.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숨을 쉬어야 하고 숨을 쉰다는 것은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단어들을 생각하면 먼저 마음이 따뜻해져 옵니다. 그런 일들을 느낄 때마다, 그리고 어느 누군가가 제게 그런 사람으로 다가 올 때 전 너무나 가슴이 벅차 쉽게 울곤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래서 전 누군가에게 이런 단어들을 요구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가 제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기를 알게 모르게 압박하며 살아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실망하고 힘들게 하고 떠났던 것이 제 삶의 궤적이었다는 기억을 떠올려 봅니다.

오늘 밤 늦게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시골의 작은 일터에서 일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오래간만에 서울로 나들이 한 것 같았습니다.

이쪽 분야가 본래적으로 사람을 대해야 하는 곳이라 아무리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라도 괜히 신경 쓰이고 힘든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신적으로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딜 가서도 편할 수 없는 환경이니 자신의 일터를 떠나 자유로운 곳에서 자신을 해소하고픈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오늘 그렇게 서울 나들이를 한 후배들이 그랬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살을 부대끼고 살다가 각자의 일터로 흩어져 살았으니 얼마나 그리웠을까요? 그렇게 그리운 녀석들 끼리 모였으니 또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습니다.

그런데 같이 지냈던 형이라고 또 잊지 않고 찾아오고 전화도 오고 난리도 아닙니다. 얼마나 먹었을까요? 똑같은 내용의 전화를 두 번이나 하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방으로 찾아와 제 손을 잡고 연신 형이 “고맙고, 보고 싶었다”고  하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자기는 너무 부족하니 형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이상한 이야기도 합니다. “쓸데 없는 소리하지 말라고”, “힘들어 하지 말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었습니다. 녀석 방을 떠날 때까지 제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합니다. 뭐가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 한 것도 없이 그저 이 자리에 몇 년이고 있었고, 녀석들 필요할 때마다 찾아와 이야기하면 들어주고 한 잔 하고 싶다고 할 때마다 마셔주었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그게 녀석들한테는 좋은 기억이었던 모양입니다. 사실 신세진 것으로 따지자면 제가 저들한테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더 큰 것이지요.

그런데도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제가 누군가에게도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니 제가 오히려 녀석들에게 고마워지기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숨을 쉬게 해 주는 공간, 숨을 쉬게 해 주는 사람. 이런 단어가 좋고 가슴을 뛰게 합니다. 그래요, 그런 것을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제가 그런 사람이 되어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행복한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