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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오래 곁에 있었던 친구 같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오래된 옷인 것 같다. 최소 15년은 넘었지 싶다. 늦가을부터 겨울에만 입는 옷이었다.

동생이 아래위 한벌로 사준 옷이다. 윗옷은 그렇게 많이 입지 않아 아직 멀쩡한데 아랫바지만 정말 너덜너덜 하다. 너무 편하고 정이 든 바지라 버릴 생각도 못했고 이 바지를 대체할만큼 편한 바지를 찾지 못해 꾸역꾸역 입었는데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오늘 버리기로 했다.

사실 후배들이 입으라고 바지도 사줬는데 고무줄과 후크 단추가 섞인 바지라 내 몸에는 안 맞다. 소아마비 때문에 왼쪽 배에 근육을 들어내서 다리에 이식하는 대수술 덕분에 고무줄로 된 바지가 아니면 입기 힘들다. 사실 바지를 입을 때 제일 고역이다.

그러다 바지를 버릴 작정을 하고 시장통을 돌아다니니 정말 딱 맞는 바지를 발견했다. 가격도 9,900원! 그것도 슬레진저 바지.

진짠지 짜간지는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꽤 고급 브랜드였는데 요즘엔 통 못 봤다. 시장통에서 이번에 보고 속으로 많이 웃었다. 가격을 생각하면 짜가가 맞는듯 싶다.

어쨌든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던 녀석을 떠나보내려니 맘 한 구석이 짠하다. 고마웠네, 잘 가시게,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