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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엄마와 여자, 모순적 삶의 양식

“카카오스토리”라는 SNS는 내가 느끼기에는 엄마들의 육아 일기장에 가깝다. 아가들과 엄마들이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올라와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특히 요즘은 동영상 기능이 추가되어 아주 어린 아가들의 몸짓이나 옹알이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엄마로서 혹은 여자로서 겪어야 하는 살짝 가슴 시린 이야기들도 있어서 한 번씩은 짠하기도 하다. 그 중에 하나가 아이를 늦게 가져 이제 돌을 갓 지난 아가와 살아가는 엄마와 여자로서 결혼 5년차가 된 여자 후배의 이야기였다. 아가가 어리니 그 동안은 육아 휴직을 하고 있다가 아가를 위해 아예 사퇴서를 쓴 사연이었다.


그렇게 사퇴서를 내고 돌아오는 길에 셀카를 찍고 사진을 올리며 이런 한 대목을 적어 놓았었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한 달 전 즈음에 올라왔던 이야기였는데 그 녀석이 올리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늘 저 이야기와 오버랩 되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저 녀석만이 아니라 함께 공부했던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생명을 낳고 양육하고 그래서 책임감을 가진 어엿한 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일은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이지만, 자신 또한 한 존재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살아가야 하는 여자로서의 삶이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 생명의 어머니로서의 삶에 또한 충실하려는 모습은 세상 어느 삶보다 위대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라틴어에 보면 ‘modus’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mode’이다. ‘양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씩 듣게 되는 라틴어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라는 말도 흔히 알려져 있듯이 ‘잠정협정’이라는 2차적 의미보다는 ‘생활양식’(뭔가에 알맞게 맞춰서 살아가는 방식)으로 먼저 이해되어야 정당하다.


어쨌든 좀 더 밀고 나가면 태생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양식에 맞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뜻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구조라는 측면에서 떠 안을 수밖에 없는 양식에 맞춰 변형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변형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그것은 이차적으로 미루어두고서라도 말이다.


옛말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자리가 사람 만든다.”


맑스 할배도 그러지 않았던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지나온 내 인생의 궤적은 주어진 삶의 양식에 늘 저항하고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삶의 양식이 나를 옥죄는 것 같으면 늘 저항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힘들어지면 튕겨져 나가거나 말이다. 한 마디로 하면 지 멋대로 산 인생이지 싶다.


차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쩌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기에 조금 더 쉬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나와 같은 혈혈단신이 아니더라도 가정과 아이들을 모두 내려놓고서라도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생물학적 남성이 좀 더 용이할지도 모른다. 물론 남성들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몇 만배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기에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방금 전에 확인한, 혼자서 영화를 보고 힐링했다는 제수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또 별별 생각이 다 들어 몇 자 끄적거리게 되었다. 아이들의 미소와 이야기에 더 없이 행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한 존재로서의 삶을 아쉽게 생각하는 여자로서의 엄마.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양식이라는 것이 굴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주어진 양식이 주기도 하는 행복이라는 모순적 행보가 참 낯설게도 느껴진다.


어렵다, 뎅장.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