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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우리 엄마 글자 몰라요


엊그제 파일 정리를 한다고 외장하드를 뒤적거리다가 엄니와 첫째 조카가 함께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엄니 돌아가시기 1년전 즈음에 찍은 사진이었다. 많은 늙으셨고 살도 많이 빠지셨을 때였다.

어제 거의 밤을 세우다 싶이 하며 후배 녀석과 이것저것 이야기하다가 엄니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내가 가진 일종의 강박 같이 것이 어디서부터 왔을까 하고 생각해 보니 엄니 때문이었다는 것을 또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이야기 하다가 울컥하기도 했었고.

내가 가진 강박 중의 하나가 지식을 아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권력관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뼈저리게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모르면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충분히 알려 줄 수 있는 문제인데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근데 왜 이런 권력관계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 강박처럼 자리잡았냐 하면 바로 엄니 때문이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엄니께서 글을 모르신다는 것을 어렴풋이는 알고는 있었는데 그걸 피부로 알게 되었던 것은 궁민핵꾜를 들어갈 즈음에 있었던 두 가지 사건 때문이었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그 경험이 나에게 이런 강박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하나는 엄니와 외출하고 돌아오는 찰라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엄니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이름으로 버스를 찾는 것이 아니라 버스 번호를 기억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것을 알고는 엄니께서 진짜로 글을 모르시는구나 싶어 어떤 느낌이 아니라 뭐라 할 말이 없어졌었다. 약간 슬펐던 것 같기도 했다.

또 하나는 전남 여수 애양재활원에서 수술을 받고 퇴원해 고속버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속버스가 중간 휴게소에서 쉬었을 때, 그 전 날 먹은 음식 때문에 엄니도 나도 심한 배앓이를 했었다. 엄니께서 나를 먼저 버스에 태워놓으시고 엄니도 화장실엘 가셨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엄니께서 오시지도 않았는데 출발하려는 것을 느끼고는 내가 앉아 있던 좌석에서 큰 소리로 "우리 엄마 아직 안 왔어요. 우리 엄마 글자 몰라요." 하고 외쳤었다. 엄니께서 글자를 모르시니 고속버스를 글자로 찾는 것이 아니라 버스가 있었던 위치를 기억하고 찾아오시기에 버스가 다른데로 옮겨지면 엄니께서 못찾으신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외쳤던 것 같다.

이 두 사건 이후로 뭔가를 알 수 없다는 것 혹은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가에 대해 아주 어린 나이였지만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엄니께서 글 때문에 곤란하시지 않도록 나름 무던히 애를 썼던 것 같다. 병원을 가든지 다른 어디를 가든지 어리지만 난 글자를 알기에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숙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점점 들어가며 글 뿐만 아니라 어떤 것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것이 참 불편할 뿐만 아니라, 좀 심한 표현이지만, 뭔가를 아는 것들에게 착취당하기 쉽다는 것을 더 크게 깨달아 갔다. 그러면서 엄니의 모습이 많이 겹쳐지고 어떤 것들에게 사람들이 착취당하지 않도록 내가 아는 것은 다 알려주어야 한다는 강박같은 것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떤 것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들의 권력이 사라지는 것이니 당연히 난 늘 감시의 대상이었고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나에 대한 유언비어도 생겨났고 중상모략도 많았었다. 그럴 수록 이상하게 난 꺾이기보다는 "그래? 그럼 갈 때까지 가보자.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전투력이 더 충만해 지는 것을 느끼곤 했었다. 참 신기한 인간이었다.

나중에서야 푸코를 읽으며 지식과 권력과의 미묘한 밀착관계를 알게 되어 내가 잘못된 짓거리를 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 더 용기를 내기도 했었다. 지식을 가진 것들과 알지 못하는 사람들 사이의 모종의 권력 질서 말이다. 이러한 권력질서 관계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알기면 하면 바로 사라져버릴 수증기와 같은 것인데 권력을 가진 것들이 알려주지 않는데서 기인하는 것이다.

20대 팔팔할 시절 겪었던 아픔들이 많았지만 난 후회도 아쉬움도 없다. 그러기를 잘 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런 강박의 원인이 엄니의 불편하신 모습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지가 사실 몇 년 되지 않았다. 나에게 이런 강박이 어디서부터 생겨난 것이고 왜 이렇게 집착할까 싶어 고민하다가 문득 깨달았던 것이다. 알고나서는 마음이 많이 편해졌었다.

엄니와 같이 몰라서 불편하고 알게 모르게 지배당하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내가 뭔가를 안다면 어떻게해서든지 알리고 사는 것이 엄니를 배신하지 않는 길임을 안다. 나를 이만큼이나마 있게 해 주신 것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몰라서 불편하지 않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