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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出家, 또 하나의 시작


구도자와 종교인의 길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열려 있는 길이다. 하지만 한 종교에 온전히 헌신하는 길은 조금은 다른 길이다. 여기서 다르다는 말은 특별하다는 뜻이 아니라 일상적이지 않다는 말이다. 

불교의 승려, 이슬람의 이맘, 유대교의 랍비, 동서방교회의 사제, 개신 교회의 목사 등, 다양한 종교와 그 종교의 전통에도 불구하고 한 종교에 온전히 헌신하여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치뤄야 하는 의식은 바로 출가(出家)라는 과정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반을 버리고 안전과 평안을 뒤로 하고 고된 길을 가겠다는 마음과 상징적 행위가 출가이다. 다양한 종교가 있는만큼 이 출가라는 의식도 다양하다. 

불교에서 출가는 속세를 떠나 불문(佛門)에 드는 것을 말한다. 스님들의 출가는 머리를 깎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 불경에 따르면 “머리를 깎는 이유는 교만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믿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의 표상으로 본다. 마음속의 번뇌가 머리카락으로 드러난다고 여긴다. 깎아도 깍아도 자라는 머리카락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번뇌와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머리카락을 무명초(無明草)라고 부른다.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출가의 첫 걸음인 삭발은 불문에 드는 과정이니만큼 엄숙하고도 장중하게 진행된다. 삭발의식은 청수와 삭도가 준비된 상태에서 은사스님이 손수 머리를 깎는다. 삼귀의, 반야심경 등을 봉송한뒤 삭발 전에 다시 한번 묻는다.

“지금이라도 돌아갈 수 있다.”

태산처럼 짓누르는 그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면 머리칼이 한올씩 잘려나간다. 발심이 곧 성불이라는 의미의 집도게(執刀偈)가 울려퍼진다. 다음과 같다.

執刀偈(집도게)

寶殿主人曾作夢(보전주인증작몽: 보전에 주인공이 꿈만 꾸더니)
無明草茂幾多年(무명초무기다년: 무명초 몇 해를 무성했던고)
今向金剛鋒下落(금향금강봉하락: 금강보검 번쩍 깎아 버리니)
無限光明照大千(무한광명조대천: 무한광명이 대천세계 비추이네)

나와는 다른 전통의 종교 의식이지만, 한 사람의 구도자이고 한 종교에 온전히 헌신하겠다고 뚜벅뚜벅 걸어가며서 내 안에 저런 의식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가만히 해보게 된다. 머리를 깎지 않지만 내 안에 깎아야 할 무엇인가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 않으면 깎았던 머리가 계속 자라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고 말이다.

오전 내내 오락가락 하는 비를 보며 내 안에 자라고 있는 머리카락들을 차분히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