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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일제 시대 고려공산당의 분열에 관한 논쟁점들

조선말 독립운동사에 있어 내가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은 "고려공산당"의 분립이다. 깊이 들여다 본 것은 아니고 다만 수박 겉핥기 식으로 논쟁점 정도만 알고 있다. 상해파 고려공산당과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대립이다.

지금까지 논쟁되고 있는 것은 왜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운동 발생의 초기부터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분열했는가? 분열을 지속시킨 원인은 무엇인가? 이 문제들을 둘러싸고 대략 3가지 견해가 논의되고 있다.

첫째 고려공산당 이르쿠츠크파는 러시아에 귀화한 이념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이고, 상해파는 한국의 독립을 획득하기 위해 소련의 도움을 얻고자 했던 민족주의자들이라고 해석하는 견해가 있다. 이에 따르면 상해파 구성원들은 방편적인 사회주의자이며, 실제로는 민족주의자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흔히 쓰는 말대로 활용주의 노선이 상해파였다는 뜻이다.

둘째, 상해파도 역시 이르쿠츠크파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노선을 견지한 당인 것은 틀림없다고 보는 견해다. 상해파를 민족주의자나 다름없이 보는 견해는 이르쿠츠크파의 중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르쿠츠크파나 상해파는 둘 다 한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계급 없는 사회의 실현이라는 최종목표를 가지고 있었으며, 양파 사이에는 그 어떤 이론적, 전술적 차이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그런데 이 견해가 가지고 있는 것은 그들의 당권 쟁탈은 무원칙한 것이었으며, 그 원인은 조선인의 파쟁적 민족성 때문에 야기된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내가 상당히 싫어하는 견해다. 어떻게 보면 식민지적 관점이 그대로 묻어 있는 견해로 보인다.

하지만 이 견해는 상해파의 실체 파악에 관한 한 첫번째 견해보다 더 사실에 가깝다는 점에서 학설사상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는 것이 이쪽 학계의 언급이다. 그럼에도 양파 사이의 분쟁의 원인에 대한 문제, 양파 정치사상의 이해방식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왜 분열했는지가 답이 안 나온다.

셋째 견해에 따르면 이 두 분파의 분쟁은 자금·권력·군권을 둘러싼 단순한 패권 다툼이 아니라 혁명운동의 방법과 정책을 둘러싼 노선 상의 대립의 표현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은 조선혁명의 성격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간주한 데 반해, 상해파 공산당은 민족해방혁명을 선행한 뒤에 그것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성장·전화한다는 연속혁명론을 견지했다고 한다. 또한 상해파 공산당은 민족혁명단체에 대한 통일전선 정책을 취한데 반해 이르쿠츠크파는 조선의 부르주아지 세력을 조선 프롤레타리아의 적대자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두 분파 간의 분쟁의 배후에는 혁명이론과 정책에 대한 불일치가 가로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두 공산당이 자금과 권력, 군권을 놓고 다툰 것은 내분의 결과적 현상일 뿐으로 본다. 그 진정한 본질을 구성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이 견해의 골자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양파 사이의 이론적,정책적 불일치가 영속된 것은 아니었다. 양자의 대립은 조선의 구체적 현실에 걸맞은 혁명론을 정립하고 그것을 중심으로 광범한 대중을 조직할 때 비로소 해소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극동민족대회, 즉 1922년 1월 21일부터 2월 2일까지 모스크바에서 열린 코민테른 국제대회에 참석한 이후 종전의 사회주의 혁명강령을 고쳐서 민족해방혁명의 과제를 사회주의 혁명에 선행하는 한 단계로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종래 민족통일전선 정책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강령과 배치된다고 인식하던 데서 벗어나, 민족혁명단체들과 제휴하여 민족통일전선 기관을 설립할 필요성을 인정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이 두 분파 사이에 존재했던 강령과 정책의 불일치는 이때부터 해소됐고, 경쟁하던 두개의 고려공산당을 통일시킬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마련됐다고 본다. 1922년에 양파의 임시연합중앙위원회가 결성되고, 고려공산당 통일운동이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견해들이 1960년말부터 1980년 중후반의 논의들이라 약간 올드한 것이 문제이긴 하다. 그 이후로 전개된 논의들도 이 논의들을 기반으로 올려진 것이라 뚜렷한 발전 양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새로 첨가된 사료들도 없어 보이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