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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명예. 정의, 자유 그리고 변화


인문학 모임의 한 참석자는 아들만 둘이시다. 자신이 어릴 때는 집 안에 가훈이 있어서 늘 듣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이 살고 계셨단다. 그러다가 가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들들에게 요즘 자주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선택의 상황이 생기면, 명예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연수로는 3년, 달수로는 17개월을 이어오고 있는 인문학 모임에서 읽은 책들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소포클레스 <비극> - 호메로스 <일리아스> -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 헤시오도스 <신들의 계보> - 헤로도토스 <역사>로 이어지는 고대 희랍 문학과 역사 책들에서 얻은 힘 말이다.


이런 고대 희랍 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를 시대 순으로 나열하라고 하면,

<명예> - <정의> - <자유>

일 것이다.

물론 이 키워드는 그 문학들이 글로 정착되고 창작되던 시기의 중요했던 가치였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필요했기에 더 고대로부터 끌어왔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이다.

인문학 모임의 한 구성원 분의 변화는 그렇게 읽어내려갔던 책들 속에서 발견한 가치들이 내면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오늘 장장 4개월여 동안 읽었던 헤로도토스의 <역사>의 마지막 장을 덮었다. 전쟁 이야기로 가득찼던 내용들을 매주 읽으며 어떤 것이 드러날까 하고 조바심 냈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만큼 나에게도 힘든 작업이었다. 내용이나 문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내 삶에서 여러 권의 책들을 혼자 읽기도 했고 여럿이서 같이 읽기도 했지만, 한 책을 덮으면서 이렇게 어깨가 가벼워지는 것은 처음이지 싶다.

어쨌든 헤로도토스의 <역사>을 덮으며 희랍인들이 목숨 받쳐 지키려고 했던 <자유>라는 가치가 크게 다가왔다. 어리석고 광기 서린 군주들이나 이국으로부터 지배받는 것을 거부하고, 비록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그 시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자유로운 시민으로 살겠다는 신념으로 제국과의 전쟁을 치뤄낸 희랍인들의 노고가 대단해 보였다.

반대로 나는 어떤 것으로부터 자유를 지키려고 하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무엇이 나를 자유롭게 하는가, 그 자유를 빼앗으려는 것들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으로 인문학 모임 구성원들께 했던 이야기가 있었다.

“문학을 창작하고 역사를 기록하는, 더 나아가 글이라는 것을 남기는 모든 행위 자체는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과거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역사의 기록은 현재와 미래에 다시는 그런 잘못들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좋았던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일은 자신들이 지켜가야 할 가치를 이어가려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머릿속을 맴도는 말을 꺼내놓고나니 사람은 과거와 현재를 사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를 사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인간은 결코 일직선 상의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닐자도 모르겠다.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미래로 개방할 수 있을 때만 의미있는 존재가 아닐까 싶었다.

과거와 현재만을 위한 인간은 추악한 존재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