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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조선의 선비정신과 고산 윤선도의 오우가

孤山 尹善道(고산 윤선도) 선생님은 조선 시대 강직하기로 소문난 선비셨다. 속된 말로 옳은건 옳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해야 직성이 풀리셨던 분이다. 그러니 누군들 가만히 두었겠나?


그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서인(西人) 측에게는 눈에 가시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런 이유로 그렇게 총명하고 다재다능했지만 관직에서는 그리 오래 계시지 못하셨고 오랜 유배생활을 보내시기도 했다. 이런 선비께서 한글의 멋스러움을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한글로 된 많은 시조를 남기셨다. 그 당시 선비로서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어제 약속이 있어 대학로를 거쳐 종로로 나가다가 시간이 좀 남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둘러보다가 또 오랜만에 윤선도 선생님의 五友歌(오우가)가 시비를 보고 읊으면서 잠시나마 좋은 시간을 가졌더랬다. 속으로 몇 번을 되뇌면서 선비 정신이 저런 것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많이 부끄럽기도 했다. 


일본 식민사관에 쩌든 것들이 조선을 당쟁의 역사로 치부하고 조선의 사대부들이 쳐먹고 할 일 없어 논쟁이나 하고 있었던 집단으로 깎아내렸다. 정말 잘못된 역사관이고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완전히 도려내는 厚顔無恥(후안무치) 한 짓이다. 그런 좋은 정신들을 죽이지 못해 환장했던 것들이 일본 식민사관주의자들이었고 군사정권의 개쓰레기들이었다.



조선의 선비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한 시대를 책임지려고 하셨던 분들이었고, 그런 과정에서 치열하게 논쟁하고 무엇이 바른 것인가를 고민하셨던 분들이었다. 유배생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송죽(松竹)같은 분들이셨다. 


조선 왕조는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는 장수 국가로서 500년 이상이나 지속된 나라였다. 그 장수의 주 요인에 ‘성리학적 명분 사회’가 있다. 패도(覇道) 즉 힘에 의한 폭력적 지배가 아니라, 왕도(王道) 즉 명분과 의리를 밝혀 국민을 설득하고 포용하는 정치를 지향하고, 법치보다는 덕치를 우선하는 성리학적 통치 철학이 조선 왕조를 지속시킨 힘이었다. 


법치의 패도 정치가 강제적인 법의 집행에 의지하는 것이라면 덕치의 왕도 정치는 인간의 자율성에 크게 의지하는 정치이다. 그러므로 왕도 정치와 덕치의 장에서는 교화를 통한 전 국민의 인간화 작업이 중요하다. 명분과 의리로써 국민을 설득하고 덕치로써 국민을 포용하려는 조선 왕조가 인간화 작업의 과정에서 설정한 모범 인간형은 어떤 것일까? 


조선 왕조가 설정한 이상형은 학예일치(學藝一致)를 이룬 사람이었다. 학문, 즉 문(文)ㆍ사(史)ㆍ철(哲)을 전공 필수로 알아 이성 훈련을 체득하고, 예술, 즉 시(詩)ㆍ서(書)ㆍ화(畵)를 교양 필수로 하여 감성 훈련을 체질화한 사람, 즉 이성과 감성이 균형 있게 잘 조화된 인격체, 그것이 조선 왕조가 설정한 학예 일치의 이상 형이었다.


또한 조선 왕조를 장수하게 한 덕목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최고 통치자인 왕도 인간화 작업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조선 왕조에서는 최고 통치자인 왕에게도 인간화 작업이 강도 높게 요구되었다. 왕의 의무 사항에는 신하들로부터 교육받는 제왕학이 있었다. 최고 통치자의 자질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왕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에 소홀한 왕은 반정(反正)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학문적 능력과 군주의 자질을 겸비한 이상적인 학자 군주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최고 통치자인 왕도 비켜 갈 수 없었던, 조선 왕조의 인간화 작업이 탄생시킨 이상형, 그것이 선비(士)였던 것이다.


윤선도 선생님도 당시 서인의 최고 수장이었던 尤庵 宋時烈(우암 송시열) 선생님과 함께 효종, 현종을 가르쳤던 왕의 스승이셨다. 


이런 선비정신들이 잘 살려지고 이어지고 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 나라의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것들이 더욱 그리해야 한다. 목민(牧民)의 심정으로 말이다.


윤선도 선생님의 오우가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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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友歌


- 孤山 尹善道


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수석)과 松竹(송죽)이라

東山(동산)의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水>

구룸빗치 조타 하나 검기를 자로 한다

바람 소리 맑다 하나 그칠 적이 하노매라

조코도 그츨 뉘 업기는 믈뿐인가 하노라


<石>

고즌 므스 일로 퓌며셔 쉬이 디고

플은 어이 하야 프르는 듯 누르나니

아마도 변티 아닐손 바회뿐인가 하노라


<松>

더우면 곳 픠고 치우면 닙 디거

솔아 너는 얻디 눈서리를 모르는다

九泉(구천)의 불희 고는 줄을 글로 하야 아노라


<竹>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

곳기는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는다

뎌러코 四時(사시)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 


<月>

쟈근 거시 노피 떠서 만물을 다 비취니

밤듕의 光明(공명)이 너만니 또 잇느냐

보고도 말 아니 하니 내 벋인가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