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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대한민국, 공부하지 않는 대통령만 있는 나라


오(吳)나라의 역사가 위소(韋昭)는 오나라의 정사인 《오서》(吳書)를 편찬했다. 그 오서(吳書)의 오주전(吳主傳)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시대, 오나라는 전략요지인 형주(荊州)를 공격하여 촉(蜀)나라 장군 관우(關羽)를 죽였다. 촉나라 유비(劉備)는 복수를 맹세했다. 서기 221년, 유비는 자신을 황제라고 칭하고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오나라 손권은 촉나라의 공격을 보고 받고, 황급히 신하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논의하게 된다. 손권은 위나라의 구원을 요청하기로 결정한다. 손권은 중대부 조자(趙咨)를 사신으로 위나라에 보냈다. 

사신을 출발시키기 전에, 손권은 조자에게 오나라의 체면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몇 번이고 당부했다. 조자는 손권에게 이렇게 말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만약 잘못된다면 저는 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겠습니다.”

조자가 위나라의 수도인 낙양에 도착하자, 위(魏) 문제(文帝) 조비(曹丕)는 그가 구원을 요청하러 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조비는 조자를 접견하고 일부러 그에게 물었다. 

“손권은 어떠한 군주인가?”

“저의 군주께서는 총명하시고 인자하시며, 지혜와 큰 뜻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조비는 이 말에 미소를 지으며, 조자가 과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알아차린 조자는 다시 몇 가지의 예를 들면서 말을 계속했다. 

“저의 군주께서는 노숙(魯肅)을 중용하셨으니 ‘총명하다’ 할 수 있고, 여몽(呂蒙)을 발탁하였으니 ‘현명하다’ 할 수 있습니다. 우금(于禁)을 사로잡고서도 그를 죽이지 않았으니 ‘인자하시다’ 할 수 있으며, 형주를 빼앗으면서도 칼에 피를 묻히지 않았으니 ‘지혜롭다’ 할 수 있습니다. 삼주(三州)를 차지하시고 사방을 노려보게 되었으니, ‘영웅다우시며’, 폐하께 몸을 굽히게 되었으니 ‘지략(智略)이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데도 총명하고 인자하며 웅지(雄志)와 지략을 겸비한 군주라고 할 수 없겠습니까? 그분께서는 틈이 나는 대로 시(詩)를 비롯하여 온갖 경전을 읽습니다. 또한 ‘역사’(歷史)에도 조예가 깊어서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 문장의 단편인 말만을 뒤적거려 따오는 많은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조비는 조자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위협하는 말투로 다시 물었다. 

“만약 내가 오나라를 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소?”

조자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대답했다. 

“큰 나라에는 작은 나라를 정복하는 무력이 있고, 작은 나라에는 큰 나라를 막아내는 방책이 있는 법입니다.”

조비가 곧 다그쳐 물었다. 

“그대의 오나라가 우리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조자는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저의 오나라에는 백만의 용사들이 있으며, 장강(長江)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차지하고 있어서, 무엇으로든지 다른 사람들을 두렵게 할 수 있습니다.”

조비는 조자의 태도와 말솜씨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태도를 바꾸어 친절한 말투로 조자에게 물었다. 

“오나라에는 그대와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있소?”

“저와 같은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수레에 싣고 말로 되어도’(車載斗量) 그 수를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조비와 그의 신하들은 조자의 말을 듣고 감탄을 금할 수가 없어 이렇게 말했다. 

“사신으로 외국에 와서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았으니, 선생이야말로 최고의 평가를 받기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분이오.”

조자는 오나라에 돌아와서, 손권에게 더욱 중용되었으며, 기도위(驥都尉)에 봉해졌다. 

이 이야기에서 흔히들 인용되는 말이 “수레에 싣고 말로 잰다”는 뜻의 “차재두량”(車載斗量)이다. 풀이하자면 “흔하거나 쓸모없는 것들이 매우 많아 조금도 진기(珍奇)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정작 더 중요한 말이 있다. 

조자의 대답 가운데 있는 ‘역사’란 말이다. 동양에서 역사라는 말이 역사상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한 것이다. 물론 조비가 말한 역사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 뜻과 동일한지는 잘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문헌상으로 최초의 등장인 것이다.

삼국지에서 어떤 인간관계나 경영에 관해 쓰여진 책들이 거의 빠짐없이 언급하는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손권이다. 본받아야 할 면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실패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도 좋을 것은 손권의 본받아야 할 점에서 그가 펼쳤던 통치술이 어디에서부터 나왔을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어려서부터 총명하기도 했지만, 공부하는 군주가 아니었을까 싶다. 과장이 들어있기도 하겠지만, 역사에 능통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 역사가 그 역사가 아닐지도 모르고 말이지만.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싶다.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어하지 않은 대통령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아니 왜곡된 역사관을 가진 것들이 한 나라의 수장으로 올라갔다.

참 비극적인 일이다. 공부는 커녕 아무 생각없는 것들이 앉아 있으니 나라꼴이 뭐가 되겠나 말이다. 통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