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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미안하고 고맙고 대견하고...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운데 이유를 모르셨다고 한다. 온 병원을 돌아다녀도 원인을 모르셨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는 뒤뚱거리고 걸어야 할 아이가 일어서지도 못했다고 하셨다. 두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렸던 일이었다.

소아마비를 앓게 되면 나타나는 증상들이 여러가지이다. 그런데 내 경우가 좀 심한 쪽에 속했다고 한다. 다른 기능들이야 다 정상인데 척추의 운동기능이 손상이 되었고, 그래서 하체에 운동신경이 전달되지 않고 걸을 수가 없는 것이다. 더불어 척추곡만증이 동반되었다. 척추가 많이 휘어있다.

어릴 적 많은 수술 중에서 척추 수술이 제일 고통스러웠고 가장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했었다. 척추곡만증으로 휘어 있는 척추가 더 이상 휘지 않도록 30cm 가량의 철심을 척추 옆에 세워놓았다. 수술 후에는 목을 움직이면 안 되기 때문에 목을 고정시키는 깁스를 해야 했다. 꼬박 일 년 동안.

폴라티와 반팔 티셔츠를 합쳐 놓은 듯한 깁스를 목에서부터 허리까지 하고 일 년 동안 지내야했다. 3개월 한 번씩 깁스를 풀고 목욕을 하고 다시 깁스를 교체했다. 3개월에 한 번씩 새로운 깁스를 위해 목욕을 할 때 정말 가관이었다. 내 생전 그렇게 굵은 것들이 몸에서 나오는 것이 신기했다(ㅋ).

이렇게 목욕을 하고 나면 깁스를 교체하는데, 이게 수술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수술을 마치고 처음 깁스를 할 때도 그랬지만, 깁스를 교체할 때면 정말 사람 미칠 것 같았다. 턱과 허리에 단단한 줄을 매고 아래 위로 당기기 시작한다. 척추를 조금이라도 펴서 깁스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러다가 목과 허리가 둘로 나눠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얼마나 힘들면 입에 수건를 물게 한다. 위 아래로 정말 심하게 잡아당겨 척추를 편 상태로 만들려고 하다보니 잘못 하면 턱이나 치아가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정말 어떻게 견뎠을까 싶다.

어쨌든 수술을 하고 지내는 동안, 그리고 깁스를 교체하기 위해 3개월마다 병원을 갈 때면 한 번씩 목격하게 되었던 일들이 나와 같은 척추곡만증으로 동일한 수술을 한 환자들이 철심이 부러진 일 때문에 재수술을 받으러 온 것이었다.

당사자인 환자나 보호자들이 서럽게 우는 것을 참 많이도 보았다. 그럴 때면 엄니께서 꼭 그러셨다. “나중에 기부스 풀고 걸어다니다가 절대 자빠지면 안돼.” 어린 내가 보아도 무서운 일이었고, 혹시 잘못해서 철심이라도 부러지는 날이면 그 큰 수술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찔했었다.

이런 모습들을 보고, “나는 절대 그런 일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 척추 수술 후로는 넘어지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특히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것은 거의 노이로제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허리가 심하게 아픈 날이면 혹시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아직까지도 이런 공포심은 내게서 떠나가지 않았다. 다른 곳이 아파서 X-Ray를 찍어 보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꼭 “내 철심은 안전한가”부터 살펴보게 된다. 아마도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지 않을까 싶은데. 정말 공포심은 여전하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전부터 척추곡만증으로 인해 가장 휘어진 정점에 있는 부분이 아프기 시작했다. 빨간색으로 그려 넣은 것이 철심이 있는 모양이고 파란색으로 칠한 부분이 아픈 부분이었다. 속으로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최근에 심하게 넘어진 적도 없었고, 그 부분을 어디에 부딪힌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장 기관이 어디가 잘못됐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가 더 큰 일 생기기 전에 병원 가야겠다는 생각에 오늘 아침부터 부산을 떨고 오후에 병원으로 향한 것이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헤 신경외과로 향했고 의사 선생님의 지시대로 X-Ray를 찍고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는 의사 선생님의 진단.

“내장이나 뼈의 손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보니 가골 상태네요. 뼈가 자라고 있습니다. 뼈 주위에는 근육이 있는데, 뼈가 자라면서 근육에 염증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상태를 보니 수술할 정도는 아니구요, 오늘 주사 한 대 맞으시구요, 약이랑 파스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일주일 동안 먹어보시구요, 그래도 아프시면 다시 오세요.”

척추를 찍은 X-Ray를 보시며 말씀하시는데, 철심이 일단 무사한 것에 감사했고, 원인도 모르고 아프다가 원인을 알게 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그래서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헌책방에 들러 책도 업어 오고 도서관에 앉아 책도 읽다 왔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의사 선생님이 말한 “가골”이 뭔가 하고 검색해 보았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골(callus, 假骨) 뼈가 골절이나 그 밖의 손상으로 장해를 입었을 경우, 이것을 보수하기 위해 손상 부위에 새로 생긴 불완전한 골조직. 장해를 받은 뼈의 골막세포(骨膜細胞)가 분열하여 골아세포(骨芽細胞)를 이루고, 여기에 혈관이나 유주세포(遊走細胞)가 합쳐져서 일종의 육아조직(肉芽組織)이 생긴다. 이것이 점차 뼈와 매우 흡사한 조직으로 변하는데, 이런 유골조직(類骨組織)에 석회가 침전되어 골세포화한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골조직이 다량으로 만들어져 결손된 골부(骨部)를 보충하여 가골이 되는 것이다.

결국 알고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몸은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척추에 많은 충격이 있었고, 그것을 극복하고 손상된 부분을 매우기 위해 새로운 뼈를 자라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고맙고 대견하던지. 주인 잘못 만난 내 몸의 여러 부분들이 그래도 못난 주인이지만 그렇게 지켜주고 버텨주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미안하고 고맙고 눈물나고. 앞으로 더 사랑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말 잘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얼마나 남은 생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버텨주지도 못하는 상황도 올 텐데, 그전까지는 이제 내가 내 몸을 보살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흙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같이 가 보자, 내 몸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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