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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느낌들...



며칠 전부터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늦가을이나 초겨울 즈음이 되면 “아~ 이런 느낌이 좋았었지” 하는 것들이 있어서 글로 정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런 것을 글로 쓰고 싶은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면 내가 또 다른 나를 멀찍이서 이렇게 관조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것도 좋다. 얼마 전에 쓴 “나를 씀으로 나를 흩어뜨린다”라는 맥락에서 그런 것 같다.

어쨌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에서, 그리고 계절이 되어야 느낄 수 있는 느낌들까지, 4가지 정도의 느낌들이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 같다. 첫번쨰 기분 좋은 느낌은, 수염을 관리해야 하는 남자들이라면 누구라도 느끼는 것일텐데, 수동 면도기로 하든, 전동식 면도기로 하든, 면도를 하고 세안을 하고 난 다음 Aftershave Skin을 바를 때 피부에 와닿는 스킨의 따가움이다. 이 느낌이 힘들게도 하지만, 그 순간만 지나고, 아니 손에 스킨을 쏟아놓고 얼굴에 바르는 순간 굉장히 짜릿하게 느껴진다. 그때의 쾌감이란... “오~” 한다...ㅋ

두번째 느낌은 이건 봄이나 가을에 느껴지는 것들인데, 봄이나 가을이면 일상이 건조하기 쉬운 계절이다. 습도가 높지 않고 건조해서 빨래를 널어도 잘 마르는 시기이다. 이때 밤이나 이른 아침에 내리는 비를 참 좋아한다. 비가 내려도 습도가 높지도 않고 오히려 습도를 알맞게 해주어 좋다.

특히 이른 아침부터 내리는 비를 아침에 눈을 떠 보고 있노라면, “아~ 세상이 이렇게도 좋구나” 하는 감탄을 내뱉는다. 그리고 여지없이 Kanon 변주곡을 틀어놓고, 일회용 커피를 마시든지, 운떼가 맞으면 원두 커피를 폼나게 내려마신다. 속으로 “그래, 나도 제법 낭만 있는 놈이야” 하고 생각해 보기도 한다...ㅋ



재미있는 것은 캐논만 알고 있을 때는 캐논만 들었는데, “Yiruma”라는 피아니스트의 “Kiss the Rain”이라는 곡을 알고부터는, 가끔 내 사랑 “캐논”을 뒤로하고 Kiss the Rain을 듣기도 한다. 참 난 Kiss the Rain을 봄이나 여름에만 주로 듣는다. “다른 계절에는 이 곡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곤 한다. 이건 순전히 내 느낌일 것이다...ㅋ

세번째 느낌은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느껴지는 느낌이다. 거슬러 올라가 2003년 1월 무렵 오른쪽 다리의 고관절 수술을 받고, 그 해 1년은 꼼짝없이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때의 답답함이란 뭐... 지금 그렇게 다시 하라고 하면 죽어다가 깨어나도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다시 졸업생임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로 쳐들어가 유학 준비를 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말이 유학이지 뜻대로 되지 않아 또 그렇게 1년 가까이를 실의에 빠져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처음 시작하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의 기자 겸 간사로 일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창립에서부터 신문사가 미약하지만 자리를 잡을 때까지 2년 가까이를 신문사에서 일하며 특히 서울이나 서울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경기도 일대까지 시위 현장이란 시위 현장은 원없이 다니며 현장을 경험했었다. 운영위원장님이나 편집장님께서 “이 기자, 당신은 기독교 신문사 기자야” 하는 정체성에 관한 꾸지람을 들을 만치 그리했다.

어쨌든 기숙사에서도 더 이상 지낼 수 없게 되어, 한 후배의 도움으로 그 친구의 집에 기거하게 되는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그 친구의 집이 층수로는 2층이지만 실제 높이는 3층이나 되는 집이었다. 계단 하나가 내 발목에서 무릎의 2/3 정도나 되는 것이어서 올라다닌다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 후배의 집에서 거의 3년을 공짜로 지내다 싶이 했다. 참 고마운 후배다.

그렇게 지낼 무렵 아마 기자 생활을 하며 첫번째로 맞이한 늦가을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아침에 취재할 일이 있어, 방에 있으면 밖의 온도가 잘 감지가 되지 않으니, 가을에 입고 다닐만한 적당한 가을용 점퍼와 면바지를 입고 현관문을 딱 나서는 데, 갑자기 불어 온 바람이 온 몸을 싸늘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적으로 춥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하며 속으로는 오히려 그 느낌을 앞으로도 계속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춥고 차가운 느낌이 아니라 약간 소름이 돋는 것이 오히려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어쩌면 내 살갛에 와닿는 그 느낌으로 인해 속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육체적으로 정신으로 힘들어 하던 시기에, “아~ 내가 살아있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 좋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살갛으로부터 전해져 나를 기분 좋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 준 살갛게 와닿는 차가운 느낌을 늦가을이면 찾게 된다.

마지막으로나를 기분 좋게 하는 느낌은 겨울에 느껴지는 느낌이다. 왜 그런가 하면 몸의 여러 군데에 수술 자국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습도가 높은 날이 건강에 좋지 않다. 그렇다 보니 내 몸은 거의 일기예보 수준이다. 특히 비가 오기 전 날이면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허리가 아프기 시작하면 “아~ 내일 비가 오겠구나” 한다. 그러면 여지없다.

허리가 아픈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받은 척추 수술 때문이다. 정말 이것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인데, 내가 소아마비 중에 약간 특이한 경우에 속하는 것이 척추 소아마비를 앓게 되었다. 그래서 척추가 굉장히 많이 휘어진 척추 곡만증을 시작으로 다리로 내려가는 감각신셩들을 제 기능을 하지만, 운동신경들이 거의 마비되었다. 그래서 몸의 반을 나누어 오른쪽 다리나 손의 기능이 현저히 낮다.

이런 나를, 어머니께서 그 당시에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입 소문을 통해 널리 퍼져있던 한국에서 거의 수술비를 들이지 않고, 소아마비 수술을 최고로 잘 한다는 여수에 있는 “애양재활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나중에 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그 병원에서 수술비가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것은 미국 장로교의 의료 선교사들과 미국 장로교의 물질적 지원으로 인해 가난한 이들을 위해 거의 무료 수준으로 치료를 행하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의 의사들이 나를 진찰하면서 더 이상 척추가 휘어지지 않도록 수술을 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시간도 아마 제법 오래 소요되었던 척추 수술을 통해 갈비뼈에 척추가 휘어지지 않도록 지지할 수 있는 철심을 갈비뼈에 걸어 놓는 수술을 받고, 거짓말 하나도 없이 1년 동안 깁스를 하고 병원과 집에서 지내야 했다.

그 수술을 받고 나서는 비가 오기 전 날이면 여지 없이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여지 없다. 그렇다 보니 습도 높은 날은 내게 전쟁을 치뤄야 하는 날인 것이다. 그러니 추운 겨울이 내게는 오히려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계절이다. 추워서 난리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겨울에 나를 기분 좋게 하는 느낌이 샤워를 하고 난 다음에 느껴지는 느낌이다. 겨울에 샤워를 하고 나면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기 전에 어떤 때는 이미 물기가 다 사라져 수건 쓰기가 민망할 때가 있다. 그리고 찬 기운이 몸을 감쌀 때 느껴지는 느낌이란 참 뭐하고 바꾸기 싶지 않게 좋다. 춥다고 난리 칠 때는 언제인가 할 정도로 말이다.

몸에 남아있던 물기들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차가운 공기가 몸을 감싸고 느껴지는 뽀송함이 참 좋다. 몸의 습도가 마치 딱 맞추어져 있는 것은 이 느낌이란... “아~ 또 살아 있구나” 한다.

그러고 보면 느낌이라는 것이 몸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이다. 몸이 없다면 살아있지 않다면 느껴질 수 없는 것들이 느낌이다. 그런데 사실 난 내 몸이 부끄럽기도 했다. 20살이 넘어서야 집에서 하던 샤워가 아니라 목욕탕에서 가서 하는 목욕을 해 봤다. 그것도 나를 아끼시던 한 목사님의 강한 끌어주심이 아니었으면 평생 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가보기 시작한 목욕탕에는 사방이 거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목욕을 하고 나와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내 몸을 거울 통해 본다는 것이 처음 내게는 사실 고통이었다. 척추도 휘어져 있고 오른쪽 다리는 위쪽으로 올라가 있고. 내가 보기에도 민망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거울 보는 것이 싫을 때가 많았다. “부끄럽다”는 느낌과 함께.

그런데 어느 순간엔간 “이건 보기 싫은 것도 민망할 것도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게 뭐 내 죄도 아니고 부모님 죄도 아니고 이렇게 된 사실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그럼 이 몸 가지고 잘 살아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런 느낌이 내게 뭐 큰 해방감을 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몸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깨달음을 주었다.

이번 여름을 보내고 나서 몸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꺠달았다. 뭐 체력이 잘 받쳐주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다가, 여름 수련회 몇 건을 하고 나서는 몸이 급격히 힘들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여름의 마지막 자락에서부터 거의 한달 전까지 병원을 들락거려야 했다. 지금은 많이 회복된 것 같아 안심이 된다.

어쨌든 몸이라는 것이 참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 몸이 없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느낌들을 느껴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둘러대지 않더라도 정신이 몸보다 우위에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구시대의 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정신이 몸보다 높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없지 않나 한다.

몸이 있어야 종교도 가능할 것이다. 죽어서 몸이 없어지면 종교가 필요하기나 할까 모르겠다. 종교는 이 세상에 몸이 있을 동안에만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러니 몸은 일상이건 종교에서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느낌을 이야기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참 잡된 글인 것 같다.

하여간 이렇게 또 나를 정리해 보니 좋다. 이번에는 캐논이 아니라 Kiss the Rain를 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