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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죽어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



“정의란 무엇인가”가 철학 교양서임에도 불구하고 전체 도서 부분 판매 1위를 차지한지는 꽤 되었다. 그 뒤로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그 뒤를 잇고 있다. 문자 그대로 베스트셀러이겠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부정의 하고 자유시장주의의 물결에 숨을 헐떡이고 있는 사회인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낮에는 등불을 켤 필요가 없고 어둠 속에서야 등불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듯이 “정의란 무엇인가”에 열광하는 것은 그만큼 정의에 목마르다고 볼 수 있으므로. 누군가 그렇게 떠들었던 공정사회는 개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이름 아래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국제 정의의 문제가 거의 언급되고 있지 않다. 미국은 제2차 대전 이후 냉전체제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치・경제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국제 질서의 중심이었으며 또한 가장 많은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국가라는 사실은 청학동에 있는 동자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 현재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수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러나 원조나 이민 혹은 통상 문제와 같은 국제 정의의 문제들은 장기적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그래서 어느 한 교수님께서 나에게 “센델 책 어땠어요?” 하고 물었을 때, “네, 재미있었습니다. 딱 미국스러운 책이었습니다.” 하고 약간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테러나 물리적 충돌 혹은 전쟁과 같은 국제적 분쟁은 힘겹게 진전시켜온 윤리적 성찰을 단 한 순간에 무력하게 만든다. 21세기는 신-중세 시대라 일컬어질 만큼 국내 정의 문제에 국제적 요인의 영향력이 날로 확장되고 있다. 그 결과 하나의 정치 공동체 내에서 정의의 대한 담론은 국제 역학 관계로 인해 단 한 순간 물거품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취약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강대국인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에서 정의를 논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국제 정의의 문제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책임이다. 그러나 국제 정의에 대한 센델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는 또 다른 저술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것이 정의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