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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송경동 -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송경동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지하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짐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리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게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가끔 시 한 수를 읽고 나면 멍해지는 때가 있다.

송경동 선생님이 누군지 잘 모른다.
그런데 위의 시를 읽고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자신이 살아가고 하고자 하는 일들에
뭐가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뭔가 되먹지 않고 겉멋만 든 인간들의 작태가 무엇인가도...

나 자신을 또 생각해 보았다.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하는 모든 일들이
솔직히 열등감의 해소를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다분히 많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생각에서 그렇다.
그것이 다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부분이 그렇다.

그런데 공부를 해 나갈 수록 열등감 해소는 커녕
쌓여가는 열등감은 어떻게 주채가 안 된다...ㅋ

하여간 시를 읽으며 많이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