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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자신을 씀으로 자기를 흩으러뜨리다...


중세신학을 열어졌혔던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내를 살해하고 자신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프랑스 포스트-맑스주의의 거두 루이 알튀세르의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자신의 자선전을 남겼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라고 하면 흔히 생의 완숙기에서 삶을 반추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서전을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데 자신을 타자화시킴으로 새로운 주체를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신의 이름에 각주를 다는 작업으로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그럼으로써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글이 쓰여지면 저자는 죽는다고 저 유명한 프랑스 구조주의자 롤랑 바르트가 말하지 않았는가!? 저자는 자신에 대한 글을 씀으로 죽음에 이르고, 죽음을 통과한 저자는 새로운 주체로 부활하는 아침을 맞이하게 된다. 저자는 자신을 씀으로 자신을 흩으러뜨린다.

글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함으로 역설적으로 자기 해방을 경험하게 된다. 이것이 나에게 복음이었다. 할 줄 아는 것이 많지 않은 나에게 글을 씀을 통해 나를 죽이고 새로운 내가 현현하기를 기다리는 제의다. 이건 겸손도 자기비하도 자학도 아니다.

이것은 나를 씀을 통해 내 죽음을 맞이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부활을 경험하고, 그 자리에서 또한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리는 것일게다. 죽음과 부활, 메시야의 도래는 멀리 있지 않다. 자신을 씀 속에 있다. 그래서 날마다 나를 쓰는 것이다.

그래서 서구식 각주 쓰기 글은 어쩌면 자기를 죽이고 모두를 죽이며, 급기야 메시야를 다시 이 땅에서 죽이고 추방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기를 쓰는 일이 신학의 작업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