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 떄이지 싶은데, 현대신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읽다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학자가 ‘Dietrich Bonhoeffer’(디트리히 본회퍼)였다. 그 이후로 내 공부의 모든 기준은 본회퍼가 되었다. 누군가를 책을 통해 알게 되고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는 것을 난생 처음 경험했었다.
그의 사상과 삶에 곧잘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특히 그의 “옥중서간” 속에서 사람의 몸이 묶여 있을 수는 있지만 생각은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자유로운 몸을 가진 사상가들보다 웅대하고 깊은 그의 사상은 마치 누군가의 아우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 앞에 연약해지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는 본회퍼의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표상이 되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처럼 살아보겠다는 가당치도 않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여러번 읽고 또 읽은 책들이다.
본회퍼의 새로운 선집이 번역되어 출판될 즈음 교정을 해보라는 선생님의 명을 받고 새로운 번역문들을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워낙 뛰어나신 분들이라 감히 내가 뭘 고치거나 할 건 없었고 그냥 감탄만 했었다. 그렇게 읽었는데 새로운 번역문으로 읽을 때의 감동은 또 대단했다.
한 때는 그런 생각도 했던 게, 본회퍼를 전공할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곁눈질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전공하기에는 너무 큰 사상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나에게는 위대한 사상가이자 실천가이자 목사이다.
오늘 선배 목사님께서 아래 복기한 시로 만든 음악영상을 링크한 것을 보았다. 원 글을 알고 있는 나에게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오늘 듣고 본 음악영상은 사실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원래 이 시에 곡을 붙인 사람들은 어려 명 있었고, 독일 찬송가에도 들어가 있는 곡이었다. 가사 개작이 여러 번 이루어졌고 찬송가로 불릴 수 있도록 조정되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오늘 음악영상이 이 시로 만든 현대 교회음악 중 가장 잘 알려진 곡이었다.
어쨌든 이 시는 베를린에 있는 Prinz-Albrecht 가(街)의 지하감옥에서 본회퍼가 직접 타자로 타이핑 한 것이다(사진 첨부). 딱 한 장 분량의 시이다. 사진에서처럼 “새해 1945” 우리말로 하면 “1945년 새해”라고 되어 있다. 아마도 새해를 앞두고 떠오른 시상을 타자로 타이핑 한 것이다.
그리고 타이핑 한 시는 1944년 12월19일 본회퍼가 그의 약혼자였던 ‘Maria von Wedemeyer’(마리아 폰 베데마이어)에게 보내진 편지에 동봉되어 있었다. 그리고 1945년 여름 본회퍼의 어머니 ‘Paula Bonhoeffer’(파울라 본회퍼)께서 본회퍼의 친구 ‘Eberhard Bethge’(에버하르트 베트게)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시를 읽다가 보면 그냥 눈물이 흐른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 앞에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만도 했지만 굳건한 신앙으로 견디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그렇다. 문익환 목사님과 자주 겹쳐 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 신앙의 위인들이 다들 그러하구나 싶다.
어쨌든 한 가지 참 기분이 안 좋은 건, 몇 년전부터 본회퍼를 전유하는 방식이다. 소위 보수적인 사람들이 본회퍼에 ‘관한’ 책들을 번역하고 해석하는 걸 보면 가당치도 않다. 뭘 알고 해석한 건가 싶고 짜증이 몰려온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자신들의 탈출구를 본회퍼로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가 없다. 사실 이 부분에서 짜증이 몰려온다. 자신들의 뼈를 깎는 변화는 없이 그저 사상적 탈출구로만 전유하려는 방식이 짜증난다는 말이다.
글이 옆으로 샜다. 하여간 그저 아름다운 시 한 편 소개하려다가 또 주절거리게 되었다, 뎅장. ㅋㅋㅋㅋㅋ
Neujahr 1945
Von Dietrich Bonhoeffer
(Prinz-Albrecht-Strasse.)
Von guten Mächten treu und still umgeben,
behütet und getröstet wunderbar, -
So will ich diese Tage mit euch leben
und mit euch gehen in ein neues Jahr. -
Noch will das alte unsre Herzen quälen,
noch drückt uns böser Tage schwere Last,
Ach, Herr, gib unsern aufgeschreckten Seelen
das Heil, für das Du uns geschaffen hast.
Und reichst Du uns den schweren Kelch, den bittern
des Leids, gefüllt bis an den höchsten Rand,
so nehmen wir ihn dankbar ohne Zittern
aus deiner guten und geliebten Hand.
Doch willst du uns noch einmal Freude schenken
an dieser Welt und ihrer Sonne Glanz,
dann woll'n wir des Vergangenen gedenken,
und dann gehört dir unser Leben ganz.
Laß warm und hell die Kerzen heute flammen,
die du in unsre Dunkelheit gebracht,
führ, wenn es sein kann, wieder uns zusammen.
Wir wissen es, Dein Licht scheint in der Nacht.
Wenn sich die Stille nun tief um uns breitet,
so laß uns hören jenen vollen Klang
der Welt, die unsichtbar sich um uns weitet,
all deiner Kinder hohen Lobgesang.
Von guten Mächten wunderbar geborgen,
erwarten wir getrost, was kommen mag.
Gott ist bei uns am Abend und am Morgen
und ganz gewiß an jedem neuen Tag. -
“선한 힘들에 관하여”
선한 힘들에 신실하고 조용히 둘러싸여
놀랍게 보호받고 위로받으며,
나는 이날을 그대들과 더불어 살기를 위하고
그대들과 더불어 새로운 해를 향해 나아가기를 원한다.
지나간 해는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악한 날은 여전히 우리를 짓누른다.
아, 주님, 우리의 놀란 영혼에
당신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구원을 주소서.
당신께서 우리에게 넘치도록 가득 찬
쓰디쓴 고난의 무거운 잔을 주신다면
당신의 선하고 사랑스런 손으로부터
그것을 두려움 없이 감사히 받겠나이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번 세상에 대한 기쁨과
그 태양의 찬란한 빛을 허락하신다면
우리는 과거의 것을 기념하고자 하며,
그때 우리의 삶은 온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둠 속으로 가져다준 양초들이
오늘 따뜻하게 밝게 타도록 하소서.
가능하면 우리를 다시 하나로 만드소서.
당신의 빛이 밤에 빛을 발하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적막이 우리를 깊이 둘러쌀 때,
저 세상을 가득 채운 소리를 듣자.
보이지 않게 우리 주위로 퍼져나가는
당신의 모든 자녀들의 찬미 소리를.
선한 세력들에 의해서 신실하고 조용히 감싸인 채
우리는 위로 속에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을 기다린다.
하나님은 저녁과 아침 그리고 새 날에도
분명히 우리 곁에 계신다.
- 디트리히 본회퍼, “200. 시: “선한 힘들에 관하여””, 『저항과 복종: 옥중서간』, 디트리히 본회퍼 선집 ➑, 손규태·정지련 옮김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773-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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