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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meneutics

토마스 알타이저와 신 죽음의 신학 본문

그늘에 앉은 책들

토마스 알타이저와 신 죽음의 신학

Wortstreit 2018.11.25 21:45

Thomas Jonathan Jackson Altizer, 줄여서 토마스 알타이저. 위독하다는 소식을 알타이저 교수의 제자이자 친구 분의 페이스북에서 읽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학부 2년 때부터이지 싶은데, 1970년대 소위 급진신학자들의 책들을 일부러 골라서 읽었다. 그러던 중에 이 알타이저 교수의 사상을 접하게 되었다. 내 머릿속에는 전통 혹은 정통에 대한 반발감으로 인해 시작된 지적허세였다.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람들 왜 이렇게 신앙 좋아?"였다. 이름만 급진이었지 너무 신앙 좋은 옆집 아자씨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문제의식이 그들의 삶의 자리에서 시작된 고민이라는 것도, 그들의 고민이 남조선에서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사실 이들 급진신학자들의 글들을 읽을 때는 포이에르바하나 맑스의 종교비판을 머릿속에 그리며 찾아 읽었다. 그러나 이들은 저 두 사람의 종교비판과는 조금 거리가 먼, 그러나 이들을 어떻게 극복해 낼 것인지, 그리고 서구사회 속에서 그리스도교의 위상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된 신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스도교가 살아야 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렇게 글들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이들 급진신학의 뿌리는 독일의 비운의 천재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로 또 본회퍼 참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본회퍼의 신학을 이해하려고 무던히도 애썼다.


어쨌든 알타이저는 1966년 윌리엄 해밀톤과 공저로 출판한 “급진적 신학과 신의 죽음”이라는 저서를 통해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알타이저의 시도는 포이에르바하와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항하는 반 그리스도교적 신학을 쓰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현대 서구 사회의 상황에서 신앙을 의미 있게 말하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신학을 서구 사회와의 대화 속에서, 세계와의 만남 속에서 세우려 했던 것이었다. 알타이저는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이란 극단적인 표현을 가지고 나오게 된 점에 대해 미국 신학의 현상이 현대인에게 너무나 무력하기만 하다는 판단에서 오는 불만과 반항의 표시라고 했다.


더 넓은 의미에서는 전통적 그리스도교가 오늘날 무의미하고 진부해져 그 전통적인 근거를 잃은 시대, 실로 하나님이 죽은 시대, 즉 그리스도교가 지나간 시대로 보았던 것이다. 알타이저는 그리스도교의 붕괴를 가져올 위기, 서구 사회 혹은 미국에서 하나님의 죽음이 가져올 무서운 밤의 현상을 보았다.


“신학은 구원도 은총도 알 수 없다. 얼마동안 신학은 부활 이쪽에서, 어둠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신학자는 교회 밖에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말씀을 제시할 수도, 성례전을 거행할 수도, 성령 안에서 기뻐할 수도 없다. 오늘날의 신학은 그 자체가 되기 전에는 우선 잠잠해야 한다.”


알타이저는 자신의 신학적 출발을 이렇게 요약했다.


그 당시 미국 사회에서 부딪혀 오는 그리스도교의 위기, 아무도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하나님이 죽은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타당하기 위해서는 예전 형태의 신학적 언술을 계속 주장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신학을 찾아보려고 애쓴 것이다.


알타이저는 이 새로운 형태의 요구를 채울 수 있는 신학으로 하나님의 죽음과 그리스도교의 죽음을 전제로 하나님의 죽음의 신학을 전개한 것이다. 정말 신앙의 발로였다.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살아 있기를 바랬으니 말이다.


하지만 신 죽음의 신학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오래 가지 못했다기 보다 새로운 신학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고 해야 더 정확한 이야기 같다. 이후 해방신학과 종말론적 신학으로 이끌어 주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또 신학의 한 막이 내려가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울림과 문제의식은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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