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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연대한다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한 일이다

지난 2주 동안 그리스도교의 UN 총회라고 하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총회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가고 싶은 맘을 먹었더라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참석했었겠지만 별로 마음이 땡기지 않아 그냥 소식들만 듣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 가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총회가 열리기 2주 전 즈음인가 우연히 총회 기간 중 설치되어 운영되는 부스(Booth)들 중에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등 성소수자들을 위한 부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스의 한국 측 총책임을 맡고 계시는 선교사님을 만나뵙게 되어 부스에서 전시되고 나누어줄 소책자(Booklet)가 이미 영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로 번역되고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다가 속으로 “어? 한국에서 총회가 열리는데 한국어로는 왜 번역이 안 되는거지?” 했다.



하여간 이 놈의 오지랍이 문제다. 결국 입에서는 이미 “근데 한국어 번역본은 없어요, 선교사님?” 선교사님도 눈이 번쩍, 함께 옆자리에 있었던 형님 한 분도 눈이 번쩍. 두 분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뎅장. ㅋㅋㅋ


총회 때문에 떠 안았던 다른 번역들 부랴부랴 마무리 하고 하룻밤 만에 번역해서 보냈다. 양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분들이 아니라 그리 어렵지 않아 또 다행이었다. 교정하는데 하루 보내고 결국 이틀만에 책자가 완성되어 나왔다.


교정 보는 사이에 책자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형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주셨었다. “한국어 번역자로 이름 올릴까요? 괜찮겠어요? 이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 이름이 밝혀지면 곤란할 수도 있을텐데요?” “형, 그런 문제라면 신경 안 쓰셔도 되요. 그런거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더 걱정은 번역 왜 이따구로 했냐고 욕 날라올까봐 걱정이지요. 이름 올리셔요. ㅋㅋㅋ”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총회가 열리는 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어제 총회를 마치고 부스를 책임지고 있으셨던 행님께서 책자를 가져다 주셨다. 그런데 책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선물까지 딸려 왔다.총회 LGBT 부스의 총책임을 맡아 글을 모으고 출판을 담당하셨던, 독일의 Gabriele Mayer(가브리엘레 마이어) 박사님께서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카카오가 70% 함유된 독일의 유기농 초콜렛을 보내셨던게다. 오~ ㅋㅋㅋ


책자와 함께 선물을 받고 두 가지 재미있는 생각도 들었는데, 한 가지는 한국어로 총 1,000부가 제작되었는데, 한 권도 남지 않고 전부 나누어졌단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금기시 하는 한국 교회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관심들이 많구나 싶기도 했다. 또 한 가지는 마이어 박사님께서 보내신 짧은 감사 편지에 이모티콘이 재미있었다. 연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머가 있으신 분 같아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 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어떤 책임감이나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성정체성 때문에 인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확신은 분명하다. 소수자들이기에 억압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내 입장에서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어디 성소수자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세상에 자신들과 같지 않다고 폭력을 가하고 핍박하는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그렇게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내가 고난당할 때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연대는 그런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연대하여 맞설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