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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생각이 부족한 인간이 헌법을 만지작거려서는 안 된다(번역 전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월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을 제작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72·사진) 감독이 일본 자민당 소속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헌법개정을 질타하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사죄·배상해야 한다는 글을 발표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야자키 감독은 자신이 운영하는 애니메이션 제작회사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매달 무료로 발행하는 소책자 ‘열풍’ 이번호에서 ‘헌법개정, 당치도 않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열풍’은 지난 10일 5000부가 발행돼 전국 서점에 배포됐으나 순식간에 품절됐으며, 문의전화가 쇄도하는 등 반향을 불러일으키자 홈페이지에 책자 전문을 공개했다.

전문을 입수하고 한국기독교장로회 김종수 목사를 통해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이두희’ 전 EYC 총무에게 번역을 의뢰해 번역전문을 싣는다. 김종수 목사와 이두희 전 총무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미야자키 하야오

조금 더 빨리 태어났다면 군국주의 소년이었다

저는 1941년생인데, 일본헌법이 만들어졌을 때 기억은 없어요(일본헌법공포는 1946년: 편집자). 그보다, 어렸을 때는 ‘정말 어리석은 전쟁을 했구나’고 생각을 했지요. 실제로, 일본군이 중국대륙에서 저지른 몹쓸 일들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어른도 있었고, 간접적이기는 했지만 그런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듣기도 했어요. 또 공습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있었나 하는 것들도 들었어요. 전해들은 것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들어서, 바보 같은 짓을 한 나라에 태어났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일본이 싫어졌습니다.

제가 네 살 때 전쟁이 끝났습니다만, 여섯 살 위의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나 세 살 위의 아내하고는 전후경험이 좀 다릅니다. 다만 공습에 대한 기억은 있습니다. 우리 마을이 불타던 것도 봤지요. ‘져버렸다’는 굴욕감만 있었어요. 전쟁 후 미국인들이 와서 그들을 둘러싸고 구경을 해도 저는 미국인한테 껌이나 초콜렛을 받는 것은 수치스러운 짓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전쟁물 같은 것도 많이 읽었어요. 어릴 적에 나온 책에 태평양 전쟁에 대해 ‘깊이 반성한다’라든가 ‘실제로는 이랬다’같은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대포를 쏘는 일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레이더라면, 얼마나 엄청난 대포였나’ 하는 것이나, ‘열심히 했는데 전부 소용없게 되었다는 것’ 같은 것을 여러 분야의 사람들, 결코 영웅이 아닌 사람들이 쓴 것들이 많이 출판되었습니다. 

경기가 좋은 이야기 따위는 정말 없었습니다. 군함이 가라앉은 뒤에, 승무원들이 표류해서 어떻게 살 수 있었는가 하는 이야기를 포함해 아이들이면서 ‘정말 비참한 전쟁이었구나’라는 기분만은 크게 있었습니다. 

후에 로버트 웨스톨이 쓴 ‘기관총 요새의 소년들’ 등을 읽었을 때, ‘아, 이 사람이야말로 내 선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공은 전쟁하의 소년으로, 어른들이 ‘전쟁! 전쟁!’을 말하면서 진지하게 전쟁하지 않는 것에 화가 납니다. 그게 자기와 주위의 세계와의 경계를 나누는 계기가 되어갑니다. 웨스톨이 저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1929년생: 편집자). 그는 예순 세 살로 죽었습니다만.

저는 그의 책을 읽고, 제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기 생명보다도 더 중요한 대의가 있지 않을까?’라든가 ‘그를 위해 죽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확 쏠려버리는 타입의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전에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열렬한 군국주의 소년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보다도 먼저 태어났더라면 자원해서 전쟁터에서 허둥대다 바로 죽었을 법한 인간입니다. 당시에는 정말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알았을 때는 이미 죽었을 때라고 하는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불행인지 다행인지 저는 눈이 나빴기 때문에 특공대에는 지원할 수 없었을 것이고 선전대에서 그림이나 만화 따위를 그렸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전쟁 중에 비행기 부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소년시대의 전쟁의 기억이지만, 세상의 모습이 이른바 전시하와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은 1944년 이후, 나라 전체가 신경질적으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 아버지는 현실주의로, 허무주의자로 ‘천하국가, 난 몰라’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아버지 이야기만을 듣고 있노라면 전혀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간토대지진 때, 스미다구(區)에 있던 육군피복 공장으로 사람이 제일 많이 죽은 곳으로 도망쳐서 살아남은 사람입니다. 아직 아홉 살이었는데, 동생을 손을 잡고 도망쳤다는 게 자랑거리였습니다. 전쟁 중에는 도쿄대공습 다음날, 친척의 안부를 물어 도쿄에 왔습니다. 그러니까 두 번이나 공습을 본 겁니다.

학생시절의 기억을 물으면, 오즈야 야스지로의 전쟁 전의 영화 ‘청춘의 꿈’ 하고 똑같아서, 철저한 찰나주의자. 전쟁 중에는 병이 걸린 삼촌을 대신해서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에서 공장장을 했습니다. 지인들이 모두 ‘전쟁에 질 거니까, 그만둬라’라고 말하는데, 1945년이 되어도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투자를 하는 등.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아버지는 세계정세가 어떻게 되는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전쟁은 내가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장사로는 지금, 손님이 있고 주문이 있으니 거기에 응해서 만들면 돈벌어’라며 했다고. 그러니까 전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세계관 따위 없었습니다.

전후에는 당연히, 군수공장 따위 할 수 없으니까 남은 두랄루민 소재로, 바로 뚝 부러질 것 같은 숟가락 같은 걸 대충대충 만들었는데, 물자가 없는 시대라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렸습니다. 그걸 한 번에 만들어서 다 판 걸 매상을 나누어서, 갓 만들어진 노동조합을 설득해서 보기 좋게 회사를 해산했습니다. 그 뒤에는 공장만이 남았으니까 거기서 댄스홀 같은 걸 했습니다. 처음 1년은 사람들이 왔지만, 우즈노미야에서 기차에 타야만 하는 가누마라는 곳이었기 때문에 좀 지나고 나서는 사람도 오지 않게 되어 망했습니다. 그래서 도쿄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블루스를 추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태연히 ‘너, 춤도 못 추냐?’라고 말하는 아버지였습니다. 

전쟁 전 1935년인가, 세계공황으로 불경기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 시기가 영화의 전성기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이 있어서 돈만 갖고 있으면, 디플레이션이어서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거지요. ‘아니, 정말 그 때는 좋았었지’라고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물론 도쿄의 일부분의 일이었을지 모르지만요. 

그런 아버지가 전쟁에 대해 뭐라고 말했다고 생각합니까? ‘스탈린이 일본 인민에게는 죄가 없다고 했다’ 그걸로 끝입니다. 저는 ‘아버지에게도 전쟁책임이 분명히 있다’라고 말하고 다투었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을 짊어질 기분은 전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전후 바로 미국인하고 친구가 되어서 ‘집에 놀러와!’라고 말할 정도의 사람이었으니까요. ‘미국이 훨씬 좋아. 소련은 싫어’라고 말했습니다. 왜 소련이 싫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유가 없는 게 싫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맘대로 살았으니까요. (웃음)

제가 일본을 다시 본 것은 30대가 되어서

지금, 한도 가즈토시 씨의 ‘소화사(昭和史)’를 읽고 있는데요, 정말 힘드네요.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이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까요. 왜 다른 나라에 가서 그런 전쟁을 했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른 길은 없었던 걸까, 만주사변을 일으키지 않고 끝났더라면 무엇이 달라졌을까? 러일전쟁이 끝났을 때 일본은 요동반도에 대해서도 ‘여긴 역시 중국 땅이니까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발상이 일본에는 없었습니다. 제국주의의 시대라서 세계에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중국의 주변에는 소련도 있었지만, 영국도 있고 좀 더 가면 프랑스도 네덜란드도 미국도 있어서 세계가 모여 있었지요. 그런 역사를 인간이 밟아왔다는 것을 빼고 나서 일본만이 악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에 들어온 것뿐인데 왜 나를 붙잡느냐?’라고 말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너는 강도라니까’이니까요. 만주에 간 지인이 무엇을 하고 어떤 짓을 했는지도 어머니한테 꽤 들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일본은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되어서도, 일본의 노래는 부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국의 등불을 위해서 싸우지 않아’ 등의 러시아 민요를 불러가면서 ‘그런 조국이 있으면 좋으련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 러시아가 좋다고 할까 하면 그렇게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저는 너무도 자기 안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나보다도 중요한 것이 무언가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한 것입니다. 

제가 일본을 다시 보게 된 것은 30대가 되어서 처음으로 유럽에 다녀오고 나서입니다. 유럽이라고 해봐야 극히 일부인 스웨덴을 어슬렁거린 것뿐이지만, 돌아와 보니 내가 얼마나 이 섬의 식물이나 자연을 좋아하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일본은 엄청나게 아름다운 섬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나 히노마루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일본의 땅이라는 것이 대단한 것이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가난뱅이라든가, 여유가 있든가 하는 것과 관계없이 넉넉한 환경 가운데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메이지 신궁에 대단한 숲이 있고 그것이 인간이 만든 숲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땅의 힘을 갖고 있는 섬에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이 실은 평온하게 조금씩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도 한도 씨가 한 말이지만, 일본근대사는 40년씩 나눠집니다. 1865년 개국으로부터 40년이 되어 러일전쟁에서 이겼습니다, 거대한 빚을 남긴 채. 그 뒤 40년 걸려 군벌정부가 나라를 망쳐버렸습니다. 그리고 1945년부터 1985년 정도까지 40년 동안 경제성장을 해서 잘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거품이 터지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알지 못하는 채로 몰락해가는 40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한도 씨의 의견이 옳다고 한다면 40년간 잃어버리는 거니까 ‘잃어버린 20년’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20년 정도 더 잃게 됩니다.(웃음)

역사로 말하자면 홋타 요시에 씨는 ‘역사는 앞에 있고 미래는 등 뒤에 있다.’ 그러니까 우리들에게 보이는 것은 눈앞에 있는 지나간 것들뿐입니다. 일본의 군벌의 역사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래도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에서 정치가를 하려고 한다면 그 정도에 대해서는 교육을 받고 스스로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을 겁니다. 

이만큼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계속 거짓말을 하는 편이 좋다.

헌법을 바꾸는 것에 대해, 저는 반대로 정해져있습니다. 선거를 하면 득표율도 투표율도 낮고, 그런 정부가 혼잡한 틈을 타 얼핏 떠오른 방법으로 헌법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당치도 않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법적으로는 96조의 조항을 바꾸고, 그 뒤에 이러쿵저러쿵한다고 한다고 해도 성립될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기입니다.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나라의 미래를 결정해가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절대 다수가 늘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토론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지금, 좀 속마음을 흘려 큰 소동을 일으키고 유야무야 속여서 ‘아니오, 그런 의미 아니라니까’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게 되면 정부나 정당의 지도부의 역사인식의 결여나 정견의 결여에는 질려버리고 맙니다. 생각이 부족한 인간이 헌법을 만지작거려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공부하지 않고 찔끔찔끔 생각해서 떠오른 것을 듣기 좋은 것밖에 말하지 않는 녀석들의 이야기만을 듣고 방침을 정하니까요. 그런 걸 국제적인 무대에 내밀어 보면 모두에게 미움을 사서 서둘러서 ‘무라야마 담화를 기본적으로는 존중한다’ 같은 것을 말합니다. 참나. ‘기본적으로’라는 건 뭔가? ‘당신은 그걸 전부정하지 않았었나?’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아베노믹스도 조만간에 망하고 말테니까요.

물론 헌법 9조 하고 맞춰보면 자위대는 많이 이상하고, 이상하지만 그 쪽이 낫습니다. 국방군을 만들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직업군인 따위 공무원의 대군으로 정말 하찮게 되어버리니까요. 지금 자위대가 여기저기서 재난에 출동하는 걸 보고 있으면 ‘역시 이건 좋은 일이다.’ 하고 생각합니다. 대원들이 잘하고 있고, 예의도 바릅니다. 이라크에 갈 수밖에 없게 되어도 1발도 쏘지 않고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저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걸프전 뒤에 페르시아 만에 청소함대를 보내야했는데 기뢰가 없어 보이는 해역을 묵묵히 청소하고 작은 배예요, 무척 힘들 거라고 생각하지만 조용히 돌아왔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감동했습니다. 혹시 정말로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것이 있다면 제대로 그 때에 생각하고 어쨌든 자위를 위해 활동하는 것으로 하면 좋습니다. 처음은 꼭 늦어지겠지만 자기들부터 손을 쓰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수비하지 않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정말로 자기 나라의 사람들은 국제정치에 익숙지 않기 때문에 마음대로 조종당하고 맙니다. 혹시 전쟁이 난다고 해도 그 쪽 그래도 낫다고 생각합니다. 

전에 스위스나 스웨덴이라고 하는 중립국을 동경했던 건 사실입니다. 평화의 나라가 있어서 하이디가 뛰어다닌다는 이미지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래도 사실은 달라서 비무장중립이라는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현실주의적으로 생각해도 일정의 무장은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만 그것 이상은 ‘ちょっと待て’라고 하는 것이 역시 옳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바보 같지만 최신식의 전차정도는 다소 만들어두어도 좋습니다. 사실은 건담이라도 만들어서 행진시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하지만.(웃음) ‘실제 능력은 비밀이니까 자백하지 않아’라고 말하고, 이건 농담입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이만큼 거짓말을 해왔으니까, 계속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정합성을 원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전전의 일본은 나쁘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싶은지 모르겠지만, 나빴지요. 그건 안 받아들이면 안 되지요. 위안부 문제도 저마다 민족의 자랑의 문제니까 제대로 사죄하고 제대로 배상해야만 합니다. 영토문제는 반으로 나누던지 아니면 ‘함께 관리합시다’라고 제안한다. 이 문제는 아무리 다퉈도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해도 가라앉을 리가 없습니다. 전에 일본이 팽창했던 것처럼 팽창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때마다 전쟁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것보다도 지금은 일본의 산업구조를 바꿔가려고 하는 진지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정말 생각합니다. 이런 원전 투성이의 나라에서 전쟁 따위 될 리가 없지 않나요? 중국이 팽창하는 것은 중국의 내발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중국내의 모순은 지금이나 세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저 군비를 증강하거나 국방군을 하면 끝장이 날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냐?

법치국가로서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본헌법의 기둥인데 역사학자 호리고메 요조 씨 등은 일본에는 원래 기본적 인권의 근거가 되는 사상이 없다고 쓰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이야기되고 있으니까 ‘기본적 인권’이라고 말하지만, 그 발상은 자기들의 안에는 없다고. 그러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 호리고메는 죽기 전에 ‘불교의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만물이 부처라는 것이지요. 그것에 대해 사마료타로는 가마쿠라 다케시의 ‘명예를 소중히 여기다’라는 생각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만 이건 좀 무리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홋타 요시에은 또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다만, 일본의 전통에서 근거가 되는 사상이 없어도 역시 기본적인권보다 좋은 생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쪽 끝에 있는 나라로써 그런 것없이 지내왔지만 세계화, 국제화하는 때에는 공통의 언어를 갖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수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것을 자기들의 문화적인 전통이나 여러 가지 것들 안에서 찾아내야만 하는 것이지요.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분명히 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산업구조를 어떻게 할까의 문제입니다. ‘자기들의 먹는 것, 입을 것, 사는 것은 스스로 만들자!’라는 사상을 갖지 않고, 다만 소비하고 나중에는 모두가 서비스업 같은 그런 나라가 되도 어쩔 수 없고, 잘 갈 리가 없는 게 뻔합니다. 일하고 숫자만 받아와서 그걸로 여러 가지 사고 쓰고 하면 여러 실감이 점점 멀어진다. 실감을 손에 넣으려고 조금씩 노력하는 사람들은 있지만은 그런 사람들은 아주 조금밖에 없으니까 실제로는 일에 내몰려서 흐물흐물해져서 돌아와서 보는 것은 텔레비전이나 문자뿐이고, 이유도 모르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세계를 덮고 있는 이 시장중심의 방법은 안 되는 것입니다. 왜 우리들은 3개에 100엔 하는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 걸까? 자기 나라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않는 것 같은 옷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고, 버리고, 그게 이상한 거예요. 그런 것을 하고 있으면 제대로 살 리가 없지요. 일본은 어느 시기까지는 딸이나 아들을 위해 엄마가 입을 것을 손수 만들었지만 지금은 바늘과 실도 모르는 어머니가 많이 있습니다. 불도 모르겠죠? 남편이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라이터도 성냥도 없습니다. 그런 인간이 무사하게 이 세계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무리지요. 줄 묶는 법도 모르고. 그래도 그렇게 되면 ‘징병제를 하면 된다’고 말하는 바보가 나오게 되지요. 그 사람들은 저보다도 어릴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징병되어 큰 변을 당해 본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50대라도 60대라도 ‘네가 먼저 가라!’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가고 싶지 않다면, 자기 아들을, 아들이 없으면 손를 보내라. 그러면 징병제가 무엇인지 알게 될 테니까요.

‘자기는 제대로 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은 잘 하고 있지 않다’는 발상은 버려라! 자기가 잘 하고 있으면 그 정도는 다른 사람들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징병제도라는 것은 최악입니다. 한국에서도 징병제도가 얼마나 젊은 사람들을 거칠게 하는가 말입니다. 총 수만큼 세워놓고 행진해가면 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전쟁을 생각해도 이렇게 붐비는 곳에서 전쟁을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다.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란 말입니다. 일본은.

지금 유행하는 것은 하지 마라

헌법은 목표가 있고, 조문을 잘 하면 가난한 사람이 없어진다거나, 그런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전후 일본은, 그 헌법에 보호받으면서 지내온 경제건설 덕분에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서 수탈한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굶어죽는 사람을 보는 것은 거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만약 건강보험제도가 없었다면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엄청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 종사자는 거의 치과에도 가지 못했을 테죠?(웃음) 정말 어느 시기까지는 전후 세운 목표를 실현하려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려고 우익 정치가들도 꽤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이 이상 무리일 거라고 하니까 ‘이 제도로는 안되는 것 아닌가?’ 라든가 ‘생활보호제도가 문제 아닌가?’라든가 이것저것 이야기합니다. 어떤 제도라도 악용하는 사람은 반드시 나타나니까 그것을 예를 들어 없애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다만 어느 지방자치체도 재정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복지 관계만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건 느낍니다. 제가 사는 도코로자와의 재정지출을 봐도 이건 심각하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딘가에서 줄줄 가난뱅이가 되어 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더 이상 그런 것이니까 어쩔 수 없는 겁니다. 

그래서 장래의 희망 같은 것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재밌을까, 친구하고 한숨 쉴 수 있는 좋은 시간을 갖는다던가, 좋아하는 남편의 얼굴을 보면 기쁘다던가, 이제부터 사람은 그런 것으로 살아야 하는 겁니다. 장래의 보장 따위 없어요. 이런 말을 해도 아무런 격려도 안 되겠지만.(웃음) 그래도 원래 인간은 그렇게 살아왔단 말이지요. 

저는 일터 옆에 보역운을 만들었는데, 이건 정말 잘한 것 같아요. 제일 좋았던 건 나에게 있어서예요. 꼬마 녀석들이 ぞろぞろ 걷는 것을 보노라면 제정신 들지 않고는 못 베긴다고요. 이 녀석들이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하면 그건 암담하지만 그럼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어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니지요. 역시 축복해야 하고, 정말 축복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될 거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인구자체는 줄어도 괜찮아요. 일본의 적정인구는 3500만 명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농업기술의 진보도 포함하면 좀 더 부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5000만 명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1억 이상 있으니까, 애니메이션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인구가 줄어들면 앞으로 애니메이션도 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도 무리라면 안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언제까지나 ‘자이언츠여 영원하라!’라든가 우습기 짝이 없어요. ‘지브리여 영원하라!’도 있을 턱이 없어요. 스즈키(지브리 대표: 역주)씨가 쓰러지면 전부 죽어요. 스즈키 도시오 씨 허리가 부러지면 모두 끝이라구요.(웃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자면, ‘유행하는 것은 하지마라’라는 것. 애니메이션도 그렇지만, 유행하는 것을 쫓다보면 늦어버려. 지금 모두 입을 열면 ‘불안하다’라고 말하는데 ‘그럼 전에는 불안하지 않았나?’라고 묻고 싶어질 정도로 사실은 상황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건강하고 일할 수 있으면 돼지. 일할 곳이 없으면 자기가 만들면 돼지. 불안이 유행하니까 불안하게 된다. 그러니까 유행하는 건 하지 않는 게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