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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사회주의와 동구 현실 사회주의, 구분해서 쓰자


동구 현실 사회주의가 무너지면서 이에 대한 성격논쟁이 활발했었고 이제는 거의 한물간 지경이 되었다. 이게 사후약방문이기도 했었지만 이론의 성격이라는 그럴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어쨌든 사회주의라고 하는 단어에 치를 떠는 사람도 있고 이상적인 사회주의와 현실 사회주의를 이 개념인지 저 개념인지 구별하지도 않고 막 들이댄다. 좀 구분해서 말하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동구 현실 사회주의의 성격에 대한 논쟁은 맑스의 러시아 혁명 언급에서부터 발단이 되었으며 1929년 트로츠키의 국외 추방 이후 불씨가 타 올라 1980년대 말 체제전환 이후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그러나 사실상 논쟁은 트로츠키주의자들 주위에서 가장 활발했었고, 다른 맑시스트 진영에서는 스탈린식 규정을 따라갔으며,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민주주의론의 입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입장은 ‘타락한 노동자 국가’ 테제와 ‘국가자본주의론’으로 대표되었고, 그 한 측면에서 이탈리아 맑스주의가 시작하고, 우익 사민주의자들이 주장한 ‘관료적 집산주의’ 주장이 가세했다. ‘타락한 노동자 국가’ 테제는 트로츠키가 스탈린 체제를 두고 정식화한 이래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을 중심으로 한 제4인터내셔널이 주장했고, ‘국가 자본주의론’은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토니 클리프(Tony Cliff)와 이후 영국 사회주의 노동당의 크리스 하먼(Chris Harman) 등이 주장한 이론이다. 

그리고 ‘관료적 집산주의’는 이탈리아 맑스주의자 브루노 알(Bruno R)이 제창하고 맑스주의에서 우익 사민주의로 전향한 막스 샤흐트만(Max Shachtman)과 그 지지자 로버트 브레너(Robert Brenner)가 발전시킨 이론이다. 좌파 진영의 논쟁이 처음부터 동구 현실 사회주의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논했던 반면, 사민주의와 자유주의 진영의 이론은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라는 구도에서 현실 사회주의 성격 자체에는 그다지 깊은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이후 체제 전환과 관련해서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두 이론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성격이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어떤 현실적 효과를 누릴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무엇을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계급이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권까지 소유한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라면, 정치ㆍ경제ㆍ기술적 처분권중 하나 이상을 소유하거나 적어도 참가할 권한을 가진 계층이 생산된 부에 대한 특권적 부분을 취득할 권리를 가진 사회가 현실 사회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곧,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모든 정치ㆍ사회ㆍ경제적 권력이 국가기구를 장악한 당에 집중되었고, 그에 따라 인민민주주의 요소가 퇴색해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과 관료에 의한 새로운 불평등에 대한 인민들의 저항은 오랫동안 형성되지 못했다. 물론 1950∼60년대에 동독, 헝가리, 폴란드에서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기는 했지만, 그것은 당대 사회주의 체제 자체에 대한 저항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국의 개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시위거나 스탈린주의적 친소 세력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폴란드의 졸리다르노스치(Solidarnosc)와 같은, 당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이 발생했고, 이러한 저항은 이후 전 동유럽 국가들로 확산되어 급기야 1980년대 말의 체제전환으로 이어졌다.

그러니 사회주의라는 말을 쓸 때는 어떤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물론 사회주의 이론을 따라 형성되었던 현실 사회주의의 성과를 과소평가 하고픈 마음은 하나도 없지만, 그것이 만들어낸 폐해, 그래서 사회주의 자체도 모조리 쓰레기통으로 가야한다는 식의 논리는 아무 것도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같은 사회주의를 제창한다는 사람들끼리도 서로 말이 안 통하니 이건 뭐 어쩌자는건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