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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자화상(自畵像)

윤동주와 서정주, 이렇게 두 시인의 사진을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하실 분들도 계시리라. 조국의 암울함을 자신의 고통으로 노래하며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준 윤동주 시인.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간 친일매국노 서정주 시인. 


그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시인이 동일한 제목의 시를 쓰셨다. 자화상(自畵像). 이 두 시인에 대해 모르더라도, 시인의 이름을 지우고 시를 읽으면 시인이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쉽게 상상이 갈만큼 뚜렷한 자신들의 모습이 시 속에 들어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시인 모두 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 서정주 시인에 대한 삶을 조금 알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시집 모두를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좋아했던 시인의 삶이 그랬다는 것에서 오는 묘한 배신감에서 그랬다. 내 인생에 책을 버렸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그에 비해 윤동주 선생님의 삶은 어떠한가. 감히 누구하나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없을만큼 고결한 삶이 아니었는가. 결국 그렇게 바라던 조국의 해방을 끝내 목격하지 못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했던 시인의 운명.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그것을 운명으로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두 시인이 노래한 자화상(自畵像)이라는 시들도 참 사랑했었다. 물론 윤동주 선생님의 시가 더 절절하게 가슴에 남아 있다, 여전히 말이다. 그런데 요 몇 년전부터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 자꾸 가슴을 울리는 것을 경험한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윤동주의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을 읽으면 가슴이 아프지만, 서정주의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을 읽으면 눈이 자꾸 아프다. 엊그제도 한 그림을 보다가 또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고 계속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왜 자꾸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 눈을 아프게 하는지 말이다.




자화상(自畵像)

- 윤동주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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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自畵像)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

…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痴)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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