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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예언자를 말하다

Bernhard Duhm이라는 구약성서학계의 거두가 있었다. 구약성서의 예언서를 연구할 때면 무조건 등장하는 학자 중에 한 명이다. 그의 연구에 의해 구약성서 예언서 중의 하나인 이사야서가 최종형태는 한 권이지만 사실은 3개의 책이 이어붙여졌다는 사실이 논증되었다. 즉 제1 이사야(1-39장), 제2 이사야(40-55장), 제3 이사야(56-66장)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요즘은 이런 구분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지만 출발은 베른하르트 둠이었다.

근데 나는 둠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먼저 생각나는 말이 “lex post prophetas”이다. "법은 예언자들 후에 등장했다."는 문구 말이다. 이게 현대 구약성서학계를 훌라당 뒤집은 말이 되었다.

구약성서 첫 머리에 위치해 있는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이른바 모세가 쓴 책이라고 여겨졌던 모세오경이 구약성서에서 가장 먼저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훌라당 뒤집어 놓은 것이었다. 둠 이후 구약성서 연구는 오경이 가장 늦게 편집되어 구약성서 안으로 들어왔다는 게 정설이 되었다. 이른바 오경의 포로 후기 편집설이 대세가 되는 출발점에 선 역사적인 인물이다.

또한 그의 친구이기도 했던, 현대 구약성서학계의 뿌리가 되는 학자 중에 하나인 Julius Wellhausen이 둠의 이 말에 감명 받아 이스라엘 역사 연구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후대 학자들 중에는 벨하우젠이 실제로 저 슬로건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그의 이스라엘 역사 연구에 적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 평가야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다.



어쨌든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서” 자체 연구로는 둠에 비견될 학자가 있을까 싶지만,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 궁극적인 연구자는 Abraham Joshua Heschel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약성서를 연구하는 학자들 중에 아마 100이면 98명은 동의하지 싶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 둘은 아마 그가 유대교 랍비라서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 게다, ㅋㅋㅋ

그리고 여기에 헤셸이 영향을 준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다. 이 사실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사람들도 있겠지만,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아버지 Martin Luther King Jr.도 헤셸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그 유명한 셀마에서 몽고메리까지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행진하는 모습은 역사에 길이남을 한 장면이었다. 근데 더 유명한 건 그가 남긴 말 한 마디였다.

“행진하며 내 다리가 기도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C, 이런 도가 튼 말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 내는지 모르겠지만, 읽는 순간, 머리가 뭐에 한 대 얻어터진 것 같았다. 죽기 전에 나도 누구 머리 한 대 쥐어박을만한 말 한 마디 남길 수 있으려나 모르것다, ㅋㅋㅋ



하여간 헤셸이 쓴 『예언자들』(The Prophets)을, 그의 박사학위논문을 다듬어서 내놓은 책인데, 읽고 있으면, 헤셸은 하나님과 예언자들 뱃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 같다. 마치 내가 하나님과 예언자들의 생각을 전해받고 있다는 착각을 받는다. 계시를 받았나 하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구절 하나 하나가 산문이 아니라 마치 시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기가막히게 번역하신 감리교 이현주 목사님의 능력도 대단하신 것 같고 말이다.

또한 헤셸이 남긴 말들 중에 예언자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이해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언급 중에 하나가 Pathos라는 단어이다. 원래 있던 말이지만 헤셸이 하나님 이해 있어 어떤 전환점을 가져오게 만든 단어가 아닌가 싶다. 근데 이 단어를 번역하기가 참 지랄맞다. 내 생각에는 아예 번역하지 말고 그냥 파토스라고 쓰는게 차라리 낫겠다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느낌을 가지고 그냥 이해해야 할 단어가 아닐까 싶다.

요즘 번역본이 아닌 그의 원전을 직접 읽어보고 있는데, 헤셸이 그의 책에서 파토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Pathos is, indeed, righteousness wrapped in mystery, togetherness in holy otherness.”([하나님의] 파토스는, 사실, 신비 속에 싸여 있는 의이며, 거룩한 타자와의 동거이다.)
- Abraham Joshua Heschel, 『The Prophets』 (New York: HarperCollins, 2001), 280.

반나절 가까이를 저 문장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도대체 뭐라고 이해해야 할까 싶어서였다. 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다. 그냥 겁나게 멋져 보인다는 것 말고는 말이다. 떠오르는게 없으니 그냥 허탈하기도 해서 이렇게 주절주절 쓰게 되었다.

아, C, 정말 환장하겠다. 뎅장.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