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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고향, 어머니의 자궁일까?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를 읽으면 읽을수록 하이데거 할배가 자꾸 생각난다. 하이데거 할배의 책들은 하도 어려워 읽어도 읽은 것 같지 않아 뭐라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하이데거 할배가 현대를 일컬어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정의한, 바로 그 정의가 온갖 고생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고향 이타케와 그의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¹와 겹쳐진다.

혹시 하이데거 할배가 오뒷세이아에 대해 뭐라도 한 마디 했을까 싶어 논문들을 찾아봤지만 역시나 없었다. 하이데거 할배가 하나 쓸만도 했을텐데 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하기야 고대 그리스 철학에 대한 하이데거 할배의 평가가 그럴 생각도 못하게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어쨌든 고향이라고 하면 빠지지 않을 문학가가 하나 있다. 아마 중딩 교과서에서 처음 봤었을 나다니엘 호손이다. 호손은 자신의 삶에서 고향 세일럼이 갖는 각별한 의미를 자신의 한 책 머리말에서 자세히 묘사하기도 했다. 세일럼은 영국에서 건너온 그의 선조들이 정착하여 대대로 살아온 곳이며, 이 세일럼에서 태어나 청소년기를 보냈다.

성년이 된 후에 호손은 세일럼을 떠나 이곳저곳 타지로 전전했으나 대개의 경우 몇 년 뒤에는 어김없이 고향으로 돌아오곤 했다. 이처럼 고향 세일럼이 마치 “우주의 중심”이라도 되는 듯이 혹은 “지상의 천국”인 양 주기적으로 되돌아오는 자신의 삶의 행보를 되돌아보면서 호손은 귀향을 자극하는 고향의 이 마력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흙이 될 몸이 흙에 대해서 품는 육감적인 공감”. 

또 다른 대목에서 그는 이 숙명 같은 애착심을 사랑이라기보다는 본능 같은 것이라고 했다.

어무이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둘째, 넷째 누님과 동생네 가족과 조카들이, 그리고 온 가족이 모여 살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동생도 이사했지만, 여전히 부산에 살고 있기에 내 고향은 부산이고 명절 때만 되면 내려가야 하는데 하는 말을 주문처럼 외운다. 그나마 어무이 살아계실 적에는 명절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시간을 내어 내려가곤 했지만 어무이 세상 뜨시고 나서는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부질없이 느껴지곤 한다.

그럼에도 돌아가야 할 곳이고 그곳에서의 뭔가가 자꾸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같은 이 느낌들. 고향, 정말 뭘까 싶다. 정말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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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 굳이 『오뒷세이아』의 오뒷세우스라고 표현한 것은 『일리아스』의 오뒷세우스와 너무 다른 모습이어서 두 작품의 저자가 같은 호메로스일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생겨서 이렇게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