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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성서 해석이 폭력과 살인 기계가 될 때

성서와 현대와의 간격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0년 이상이다. 성서에 기록된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성서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인 전통은 계속되는 것이 있기도 하지만 거의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기록된 성서의 내용을 그때 그 자리에서의 의미로 이해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 즉 성서가 공간과 시간을 전제로 해서 기록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는 이유는 성서가 어떤 이들에게는 누군가를 향한 폭력과 살인의 기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자리에서의 의미를 복원하려고 노력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하는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해석학적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해방의 복음을 성령의 능력 가운데 전해야 할 교회의 사명은 온데간데없어지고 교회는 쓸모없어져 버림당하는 소금이거나 폭력의 온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역사의 증언이었다. 즉 자신들의 쓸모에 따라 어느 구절은 문자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하고, 또 어느 구절은 문자를 넘어서려고 하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식의 성서해석은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현대가 안고 있는 사회·문화적인 문제 앞에 성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최대한 그때 그 자리에서의 의미를 복원시키고 그 말씀이 지금의 이 문제와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 고민하는 노력 자체가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에 불과하다. 문제를 문제 자체로만 바라보고 성서를 이용하여 문제를 무화(無化)시키려는 자세는 폭력 그 자체일 뿐이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적인 예가 장애인 문제와 동성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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