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머리에서 손으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전쟁은 막아야...




아마 2005년 10월 즈음이었던 것 같다. 똘아이 미친놈 조지 부시 2세가 APEC 회의 차 부산에 왔던 적이 있다. 그 사건으로 부산은 부시의 방한 반대로 전국의 운동권들의 총집결지가 되었다. 인터넷 신문 기자 생활을 하던 때라 나도 고향도 내려갈 겸 부산으로 향했다.

회의가 열렸던 - 아마 벡스코였던 것 같다. 오래 되서 기억이 가물가물 어쨌든 - 곳으로 시위대가 행진을 시작했다. 기자였지만 몸이 불편했던 터라 시위대를 따라갈 수 있을까 했는데, 내가 속해져 있던 단체의 회원들의 배려로 행진을 이끄는 선두 차량에 몸을 싣고 직접 따라갈 수 있었다. 회의 장소로 통하는 다리가 두 개가 있었다. 한 곳은 접근 자체가 어려웠고, 또 다른 다리를 향해 엄청난 수의 민중 단체들과 시민 단체 소속 회원들의 행진이 시작되었다.

운 좋게 행진 차량에 몸을 싣고 다리 가장 가까운 곳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다리까지는 또 제법 먼 거리를 걸었다. 시위대의 움직임을 알고 있던 경찰 병력은 다리를 건너 오지 못하도록 2단으로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 시위대를 대비하고 있었다. 시위 행진을 하고 있는 대열보다 먼저 도착해 있던 강철연대라고 불리는 선발 시위대가 경찰 병력과의 충돌에 대비해 마스크와 팔과 다리에 보호대를 착용하고 가장 선두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선발 시위대 그 다음 2선에 학생들로 보이는 사수대가 진영을 갖춰 돌발 사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선발 시위대들이 경찰이 쌓아 놓은 컨테이너를 뚫기 위해 계속해서 물대포를 쏘아대는 컨테이너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고, 1시간이 채 흐르지 않아 컨테이너에 밧줄을 연결하고 결국 “으싸 으싸” 하는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 하나를 잡아당겨 무너뜨렸다. 제일 위 가운데 있던 컨테이너가 무너지자 환호성 소리와 함께 다리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당황한 경찰도 수세적인 방어에서 공세적인 진압으로 작전을 바꾸고 시위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도 경찰병력도 다들 놀라기는 마찬가지였고 앞선 강철노조 소속 시위대 회원들과 이내 몸싸움이 시작되고 한 차량에서 마이크를 들고 시위를 지휘하고 있던 분께서 경찰을 향해 무차별한 진압은 더 큰 사고를 불러 올 수 있으니 진정하라는 경고의 발언을 계속하고 있었고 시위대를 향해서는 차분히 후퇴할 것을 독려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그곳을 피해 후퇴하고 있던 나도 경찰의 진압을 피해 뒤로 밀려오던 시위대 사람들의 흐름에 밀려 큰 사고를 당할 뻔 했다. 나도 그때 아차 했던 것이 내가 움직이면 다들 피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후퇴하는 시위대 사람들에게 그런 경황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곳에 참석했던 민중단체 소속 회원들이야 워낙 시위로 몸이 단련된 분들이었으니까 문제가 없었지만,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 중 많은 분들은 학생들이었고 또한 휴가를 얻어 내려 온 일반 시민들이어서 다들 경찰의 빠른 진압에 놀란 상황이었다. 그랬으니 누가 차분히 앞뒤옆 상황을 체크하며 움직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내가 생각을 잘못 한 것이었다.

오히려 움직이지 않고 길 옆 가장 자리에 조용히 있었으면 차라리 안전했을 것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먼저 움직인다는 것이 경찰의 진압으로 흐름이 급박해지면서 뒤로 후퇴하는 시위대의 속도를 미리 계산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후퇴하던 시위대 중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안전하게 그곳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갑자기 이런 주절주절 옛 경험이 떠 오른 것은 한참 전쟁이라는 급박한 상황이 여기저기에서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전시상황에서 작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미국의 오바마와 그 일당들이라 국제적인 상황과 중국과의 마찰을 고려해 그런 살인적인 상황까지는 어떻게 모면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꼭 그렇지만도 않은 상황같다. 잘못하면 최소한의 국지전도 발발한 상황인 것 같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계속 머리 속에서 멤돌면서 옛 경험이 또 오른 것이다. 이런 살인적인 상황이 되면 역시나 죽어나는 것은 민중들, 특히 여성들, 어린 아이들, 장애인들이다. 전쟁의 상황에서 이들은 걸리적 거리는 장애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기에 제일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계급들인 것이다.



대학원의 지도 교수님께서 공부하신 곳이 독일의 빌레펠트 베텔이라는 지역이다. 교수님께서 독일에서 학위를 하고 계실 때부터 연락을 주고 받았던 관계였기 때문에 귀국하셔서 세미나를 하시는 날에는 자주 얼굴을 뵙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때 해주셨던 이야기가 공부를 하셨던 베텔 지역에 대한 이야기였다.

2차 대전이 발발하고 히틀러와 나치가 독일 전역의 장애인들을 학살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를 반대했던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이 장애인들을 보호하고 목숨을 살리기 위해 베텔에 마을을 형성하고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전통이 있었던 지역이라 베텔은 우스갯 소리로 장애인들의 천국이라고 한다. 새로운 시내 버스가 도입되면 가장 먼저 시험 주행을 하면서 휠체어의 승하차가 어떤 지를 점검하고 이와 맞지 않는 보도블럭들은 모조리 정리한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와 저런 세상이 있구나" 하고 얼마나 부러웠던지...

하여간 전쟁이라는 단어가 점점 머리를 멤돌면서 혹여나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면 나부터도 가장 먼저 전쟁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누군들 전쟁의 희생자가 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나마는, 언급한 바와 같이 민중들의 희생은 불을 보듯 뻔한 이야기다. 이건 가장이나 소설이 아니라 지구 상의 수많은 전쟁이 보여준 현실이다.

이런 저런 들려 오는 소식과 떠들어 대는 이야기들 중에는 마치 보복 공격이나 전쟁을 하지 않으면 무능한 대통령이고 군과 정부라는 요지가 내게는 미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도대체 전쟁을 해서 뭐가 이득될 것이 있다고 저렇게들 지랄들을 떠는지... 제 정신으로 저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싶다. 아니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확신에서 저런 이야기라도 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심산인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전쟁은 없어야 된다. 누구에게도 득이, 아니 누구에게 득이 되고 안 되고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에게도 좋을 것이 없는 전쟁은 막아야 한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전쟁은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