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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발을 담그고

내 묘비명을 지어보는 밤...






그는 여름에도 장갑을 끼고 그 어떤 누구와도 악수나 입 맞춤을 하지 않았다. 연주를 할때면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 준비해서 손목위까지 20분 정도를 담그고 시작하였고, 그의 커다란 가방에는 수 십 가지의 약병이 들어 있었다. 또한 그가 연주를 하는 어떤 곳에서도 그의 피아노 의자는 어릴 적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작은 나무 의자였다. 후에 40살을 넘길 때에 그의 연주 모습을 보면 거의 피아노에 입을 맞출 정도로 낮게 구부리는 자세가 된다. 그는 평생(그는 40살을 조금 넘기고 죽었다) 바하(Bach)의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en)을 연주하였다.

- 어느 단편에 나온 글렌 굴드(Glenn Gould)에 대한 이야기 -


페이스북에서 친구되시는 분께서 글렌 굴드에 대해 들려 주신 이야기이다. 저 이야기의 모든 것이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글을 읽는 순간, “아~ 나라는 인간은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에 온 마음을 다하고 모든 어려움을 뛰어 넘어 집중하는 모습에 존경심이 우러났다.

명성 있는 사람이 되고픈 마음도,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고 픈 마음도 없지만, 다만 자신에 일에 최선을 다해 살아간 사람이었다는 평가는 받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마음에 남겨져 있는 소망이다. 누군가 알아주든 말든 자신에 일에 최선을 다하고 집중하는 사람...

하지만 여전히 무엇을 해야 할지, 즐거워 하는 일이 무엇인지 헤매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도 부끄러웠다. 아직도 내게는 굴드와 같은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자괴감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짧은 인생을 살다간 그의 모습에서 더 그랬다.

내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얼마될까 하고 요즘 깊이 생각해 본다. 생물학적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말이다. 정말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런 생각을 해 본다. 앞으로 10년 정도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 이후부터는 쏟아내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쏟아낼 수 있는 세월을 준비해 가는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너무 많은 길과 세월을 돌아서 왔다는 자책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세월이 나에게 있었기에 또 다른 준비를 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여기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다가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간 사람이 묻혀 있습니다.”

내 묘비명을 지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