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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백 년 동안의 고독 혹은 억지로 살아야 하는 백 년

어제 관람했던 Charlize Theron(샤를리즈 테론) 언냐 주연의 「The Old Guard」는 장르로 치자면 ‘Fantasy Action’물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을 다루었으니 판타지이고 주된 것이 총격전과 육탄전이니 ‘액션’으로 보인다. 내 생각은 이런 데 누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어쨌든 고대 시대부터 죽지도 않는 인물들이 탄생했다. 일반인 같았으면 그냥 사망했을 상황에서도 부상당한 신체가 회복되어 몇 백년을 이어 살아가는 ‘전사’(Guard)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 전사들 4명이 어떤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가 없고 이게 다다.

근데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큰 울림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것이 느껴졌다. 이 고대 전사들 중 하나가 조직을 배신했지만 어찌 어찌 해결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조직으로부터 처벌을 받는다. 그 처벌은 혼자서 100년간 살다가 다시 조직으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몇 백년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겠나. 그럼에도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려 있으니 그나마 외롭지 않고 살았을 텐데 그런 사람들도 없이 혼자서 100년을 살아 예전 사람들을 다시 만나야 한다는 처벌이 내려질 때 배우의 얼굴 표정에서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전해져 왔다. 배우가 표정 연기를 잘 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너무 감정이입을 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간 작품 하나가 있었는데, 남미 콜롬비아 태생의 ‘Gabriel García Márquez(가브리엘 그라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백 년 동안의 고독』이었다. 지금은 제목이 <백 년 간의 고독>으로 불리던데 내가 기억하는 제목은 저것이었다.

이걸 처음으로 읽었던 때가, 중딩 1학년이나 국딩 5-6년 사이이지 싶다. 누님들이 읽으셨던 책이 집에 굴러다니길래 그냥 읽은 것이다. 그렇다고 저 나이 때 저 작품을 이해했을리 만무하고 나중에 한참 나이를 먹고서야, “아, 그런 내용이었구나” 하고 이해했을 뿐이다.

이 작품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걸 조금 풀어내자면, 아니 기억 속에는 다른 게 저장되어 있어서, 정말 한 줄 정도밖에 못 뽑아내는데, 백 년 동안 한 가문의 고독으로 점철된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다. 특히, 많은 비평가들이 ‘Magic Realism(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평하는 것과 같이 현실과 환상, 실제와 허구, 역사와 신화를 마술처럼 뒤섞어 놓았다. 그리고 수탈 당하는 남미 사회를 처절하게 그려냈다.

솔직히 영화와 이 책 사이의 연관성은 없다고 봐야 하는데, 그저 ‘백 년’이라는 단어에 내가 떠올렸다고 하는 게 정확할 것 같다. 아니 ‘마콘도’라고 하는 가상의 남미 국가에서 대를 이어 백 년 동안의 고독이 이어지듯 영화에서 조직을 배반해 그 처벌로 백 년을 고독하게 살아야 하는 인물 사이의 ‘고독’이 나한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문학에서는 백 년 동안 수많은 인물들이 명멸하며 고독이 이어지지만, 영화 속 인물은 혼자서 그 백 년을 죽지도 못하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영화 속에서 조직을 배신한 인물은 죽지도 않는 자신의 현실이 싫어서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 같은 희망에서 조직을 배신한 것이다. 죽고 싶어서 말이다. 이런 그에게 조직을 배신한 댓가가 백 년 동안의 고독이라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에게 죽음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까지 흘러갔다. 배우자가 있고 자녀들이 있지만 인간 본연의 메우지 못하는 고독을 매듭지어주는 것이 죽음이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 들었다. 정말 죽음의 의미가 이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뭔 판타지 액션 영화 끝장면 하나 보고 밥 먹고 사는데 하등 도움 안 되는 생각까지 뻗치고 있는 나를 생각하니, 아직 배가 덜 고프고 죽을 때가 멀었나 보다 싶다. 에휴, 영화나 한 편 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