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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연기와 공

불교용어 중에 ‘아함(阿含)’이란 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의 음사어(音寫語)이다. 즉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의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인데 한자어 자체는 뜻이 없다.

‘아함(阿含)’은 아가마(āgama)의 음사어인데, ‘전승된 가르침과 그 모음’이라는 뜻이다. 아함모(阿含暮), 아급마(阿笈摩)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과 또한 그 제자들의 해석은 당시의 중기 인도어로 암송되어 구전되었다.

이렇게 전승되어 오다가, 마치 신약성서의 복음서처럼, 내용이 정비되어 넷 또는 다섯 부분으로 된 아함경으로 집대성된다.

그러는 가운데 불교 또한 분열하여 부파불교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 각 부파마다 아함경을 형편에 맞게 전하게 된다. 그 때문에 현재 전해지는 아함경은 전승한 부파가 다를 때 내용과 언어가 달라졌다.

남방 테라와다 불교의 아함경은 니까야(nikāya)라고 하며, 팔리어로 설일체유부는 초기에는 서북인도 지방의 언어인 간다라어로, 후기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아함경을 전했다.

이 아함경은 초기 불교 시대부터 단연 압도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부파 불교 시대에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게 되었다. 불교의 중요한 사상 중에 하나인 중관 사상의 비조 용수보살의 경우도 그의 사상의 철저한 기반은 바로 이 아함경이었다.

그런데 불교가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중국 불교는 경전들 자체를 재배열 하는 작업을 완성한다. 즉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설파한 순서를 상정하고 그에 따라 거의 모든 경전을 분류했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아함경을 기초적인 경전으로 정의했다.

함부로 말할 수 없지만 중국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경전 재배열 작업이 아함경의 위치를 다르게 만든 것이다. 특히 중국의 대승불교 계열은 아함경을 기초 경정으로 정리하고 소승불교의 경정으로 낮추어 보았다. 나름 불교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중국불교가 범한 실수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부처님의 가르침은 크게 법(法)과 율(律)로 나뉘고, 그 가리침을 모아놓은 것을 장(藏)이라고 한다. 이 장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경장(經藏), 율장(律藏), 논장(論藏)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법을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것이 경장이고, 승가에서 지켜야 할 계율을 담고 있는 것이 율장이고, 경의 가르침을 깊이 연구하고 체계화한 것이 논장이다.

이 세 가지 장 가운데 경장을 남방의 팔리어 전승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니까야, 즉 부(部)라고 부르는데, <장부>, <중부>, <상응부>, <증지부>, <소부> 등 5개로 나눈다. 한편 북방 산스크리트 전승에서는 경장을 아가마(아함), 즉 <장아함>, <중아함>, <잡아함>, <증일아함> 등 4대 아함으로 전하고 있다.

중국 불교는 아함경 중 산스크리트어 전승의 4아함을 기원후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사이에 한역했다. 하지만 중국 불교에서 한역한 4아함은 단일한 전승이 아니라고 한다. 즉 경장 소속의 장아함경이 서로 다른 전승의 아함경을 한역하면서 따로따로 번역해 하나의 경장으로 집대성시킨 것으로 본다.

이 부분도 언급한 것처럼 신약성서 복음서의 양식비평이나 전승비평으로 연구하면 엄청 복잡한 부분이다. 하지만 성서학계에서처럼 이게 역사적 예수에게서 기원한 것이니 제자들의 가필이니 하는 논쟁은 덜한 것으로 보인다. 하기야 불교 경전 논의들을 다 아는 것이 아니니 내 이야기도 확실하지는 않다.

그리고 불교 학자들에 의하면 4아함경 가운데 짧은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는 <잡아함경>이 가장 오래되었을 것으로 본다. 마치 복음서에 대한 양식비평과 똑같은 원리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연구하는 것을 성서학계의 흐름을 따랐다고 하는데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하여간 역사적 붓다의 가르침에 가장 가깝고 불교의 근본이 되는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은 <잡아함경>이며 부처님의 가르침의 핵심이 집대성되어 있다고 본다. 보통 “부처님의 가르침과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많은 불교 경전 중 어떤 것을 읽으면 좋을까요?” 하는 물음에 압도적인 대답은 그래서 <잡아함경>이다. 근데 이거 정말 복잡하고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 『잡아함경』 제30권 335경 「제일의공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남기신 가르침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此有故彼有 此生故彼生 此無故彼無 此滅故彼滅”
(차유고피유 차생고피생 차무고피무 차멸고피멸)

모든 존재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상관관계 속에서 생하고 멸하기 때문에 둘이지만 결국 서로가 하나라는 뜻이다. 이것을 연기법(緣起法)이라 일컫는다. 이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약자로 직접적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 조건인 연(緣)에 의해서 만상은 생겨난다는 것이다.

여기서 참 중요한 개념이 도출되는데 바로 공(空) 사상이다. 즉 모든 존재가 서로 상호의존 하기 때문에 고정불변의 자성(自性)이 없다. 오직 무상(無常)과 연기(緣起)만 있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직도 난 이 부분의 연결 부분이 잘 이해가 안 된다. 뭐가 손에 딱 쥐어지는 느낌이 없다. 그래서 맨날 머지 머지 한다.

언제쯤 이해할 날이 올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