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아, 형, 부끄러워요

희희덕거리고 있었지만, 사실 오늘 머리꼭지 다 날라가는 일이 있었다. 속된 말로, “저거는 내 손으로 파 묻는다.” 이러고 앉아서 씩씩거렸다. 주위에서는 하지 말라고 말리는 걸 꾸역꾸역 결국 파 묻는 수순까지 갔다.

그래도 사실 분이 풀리지 않아 머리도 아프고 해서 그냥 재미있는 일이나 생각해 보자 하다가 옛날에 웃겼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그러다가 같은 일을 겪었던 동생도 심심하면 나를 놀리는 일이 하나 기억났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처구니 없고 웃기는 일이다.

예전에는 “내가 장애인 인게 어때서? 내가 뭐?” 이런 마음에 오버 액션이 많았다. 어디를 가도 당당해지려는 마음에서 튀어나온 행동들이었다. 그런데 이게 나 혼자면 문제가 아닌데 같이 다니던 동생들이 부끄러워지는 일들이, 종종이 아니라, 자주 벌어졌다.

아마 2005년 즈음으로 기억되는데, 독일에서 유명한 석학이 한국을 방문했었다. 학부 스승님께서도 영향을 많이 받으셨고 유학 가시기 전에 이 학자의 책을 번역도 하셨던 터라, 그리고 학회에서 중직에 계셨던 스승님께서 친히 연통을 주시고는 “이 군, 이날 내가 사회야.” 하시는 게 아닌가. 이건 뭐 오라는 말씀이시지 않는가!

그래서 그 당시 빈털털이에 오갈 데 없는 나를 재워주고 먹여주었던 동생 하나와 그 먼 부천까지 투덜거리면서 가게 되었다. 2005년이면 내가 기자생활을 하고 있던 때라 그 전 날 밤새워 기사를 썼던 것 같다. 그러고 날밤을 샜으니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거기에다가 초청 받은 학자가, 목이 아프다고 했나? 감기가 들었다고 했나?, 뭐 어쨌든, 자신은 강의를 하지 않고 통역을 하는 교수를 통해 그냥 번역본을 읽겠다고 하는게 아닌가. 순간 정말 개빡쳐 가지고, 속으로 “뭐 저런 XX가 다 있어?” 하는 맘에 가뜩이나 피곤한데 정말 숙면을 취했다. 동생 녀석 말로는 그 큰 강연장이 울리도록 코를 골고 잤다고 했다. 아씨, ㅋㅋㅋ

그런데 더 웃긴 건, 강연이 끝나는 시간과 동시에 내가 잠에서 깨어서는 그 큰 강연장이 또 쩌렁쩌렁 울리도록 “강연이 왜 이래!” 하고 소리를 쳤던 것이다. 강연은 하나도 안 듣고 숙면을 취한 주제에 이런 추태를 부린 것이다. 옆에 앉아 있던 동생 녀석이 “아, 형, 부끄러워요.” 하면서 옆구리를 푹푹 찔렀다.

이 정도가 되었으면 미안한 기색이라도 있었어야 할 텐데, 또 그런 미안함도 없이, “야, 뭔 강연이 이따구야, 가자!”이라믄서 강연장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스승님도 못 뵙고 그냥 냅다 부천역까지 택시 타고 나가서 지하철로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건 정말 두고두고 놀림감이 되는 이야기다.

그때를 생각하면 동생 녀석과 맨날 깔깔거리고 웃는다. 그리고 딱히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내가 장애인 인게 뭐 어때서!” 하는 약간은 열등감에서 출발하는 오버 액션은 그만해야겠다는 맘을 먹고서는 좀 조신하게 지내게 되었다. 또 원래 어디를 가면 좀 뒤쪽에 찌그러져 있는 성격이었는데 더 그렇게 되었다.

사실 내가 장애인이라는 걸 신경 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자신과 부딪치지 않고서는 상대방이, 즉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행동하는 사람들 없다. 자신과 엉키게 될 때 그제서야 내가 장애인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는 동생들 부끄럽게 하는 일들은 거의 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들은 만들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아, 옛 기억 하나 떠올리고 혼자서 미친듯이 웃었다. 뎅장. ㅋㅋㅋㅋㅋ

'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승질머리와 글의 강도  (0) 2018.07.16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동  (0) 2018.06.21
성서 해석이 폭력과 살인 기계가 될 때  (0) 2017.08.08
20160829  (1) 2016.08.30
고향, 어머니의 자궁일까?  (0) 2015.0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