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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나도 조화 따위는 거부할 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는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며 사냥을 하는 어느 장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돌을 가지고 놀던 여덟살짜리 아이가 실수로 사냥개에게 상처를 입히자 장군은 사냥개를 풀어 아이 어머니 앞에서 아이를 물어뜯어 죽게 만든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둘째 아들 이반은, 신앙이 깊은 막내 아들 알료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 알료샤, 난 신을 모독하려는 것이 아니야! (…) 그 어머니가 사냥개에게 자기 아들을 물려 죽게 한 가해자를 부둥켜안고 세 사람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주여, 당신이 옳았나이다!’라고 절규할 때 이미 인식의 승리가 도래하고 모든 것이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고. 그러나 바로 여기에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난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단 말이야. 

(…) 자기 자식을 살해한 가해자를 포옹하고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모든 사람들과 함께 ‘주여, 당신이 옳았나이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올지도 모르지만, 그때도 난 그렇게 외치고 싶지 않단 말이야. (…) 고상한 조화 따위는 완전히 포기하고 말겠어. 그런 것 따위는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구린내 나는 화장실에서 보상받지 못한 눈물을 흘리며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 그 고통받는 어린애의 눈물, 단지 그것 하나만의 가치도 없는 것 아니겠어! 정말 그럴 만한 가치가 없다고.

왜냐하면 그 애의 눈물은 보상받지 못한 채 버려졌기 때문이야. 그 애의 눈물은 보상받아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조화란 불가능할 테니. 하지만 너라면 무엇으로, 무엇으로 그걸 보상할 수 있겠니?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 눈물에 대한 복수가 될 수 있을까? 내겐 그 눈물에 대한 복수도, 가해자들의 지옥도 아무 의미가 없어. 그들이 고통을 겪은 후에 지옥이 무엇을 고쳐 나갈 수 있겠니?

(…) 난 용서하고 싶고 포옹하고 싶어. 나는 더 이상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걸 원치 않아. 그리고 만일 어린애들의 고통으로 진리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고통의 모든 금액을 보총해야 한다면 (…) 진리 전체도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거야. 

(…) 그 어머니가 사냥개들을 풀어 자기 아들을 물려 죽게한 한 그 가해자를 포옹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그 어머니도 그자를 용서할 수 없을 테니까! 만일 용서하고 싶으면 자기 몫만 용서하면 되고, 어머니로서의 끝없는 고통에 대해서만 가해자를 용서하면 되는 거야.

그러나 그녀는 갈가리 찢겨 죽은 아이의 고통에 대해서는 압제자를 용서할 권리도 없고, 감히 용서할 수도 없는 거야. 그 애 스스로가 그자를 용서한다고 치더라도 말이야! (…) 난 조화를 원치 않아. 인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원치 않는단 말이야. 

(…) 난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해소되지 못한 분노를 품은 채 남을 거야. (…) 그래서 나는 서둘러 입장권을 되돌려 보내 주는 거야. (…) 나는 …… 신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알료샤. 난 그저 입장권을 정중이 돌려보내는 것뿐이야.”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 이대우 옮김 (서울: 열린책들, 2007), 435-436.

이반의 이 이야기들은 과거의 부정의, 고통, 죽음에 대해 철저히 윤리적이다. 그는 아이의 고통과 눈물이 살아남은 자의 화해로도. 가해자에 대한 복수로도, 또는 어떤 종류의 물질적 배상을 통해서도 보상될 수 없다고 느낀다. 죽은 아이의 어머니가 가해자를 끌어안고 뜨거운 용서의 눈물을 흘린다고, 막대한 금전적 배상이 이루어진다고, 가해자가 지옥의 형벌을 받는다고 해서 이미 치러지 아이의 고통과 눈물이 되돌려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반은 부당하게 죽어간 아이의 고통과 눈물이 있는 한 “고상한 조화 따위는 포기하겠다”고 말한다. 그 고통이 진리를 위해 치러진 것이었다면 그런 진리란 아이의 눈물보다 값어치가 없다고 말한다. 이반은 그런 조화와 진리를 위해 무고한 아이들이 고통받는 것을 보아야 한다면 차라리 보상받지 못한 고통과 해소되지 못한 분논 속에 머물기를 선택한다.

세월호에서 살해된 아이들을 기억하며 나도 조화 따위는 거부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