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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서양에서의 고전, 그것은 계급이었다

어떤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시대를 이어져 끊임없이 회자되고 가치있게 여겨지고 사랑받는 것을 “고전”(古典)이라고 한다. 이 한자를 풀이해 보면, 옛 고와 법을 가리키는 전이 합쳐진 단어이다. 한 마디로 하면 규범이라는 뜻에 가깝다.



한자문화권에서야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단어였지만, 서양에서 이 단어가 현재 흔히 쓰이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동양만큼 오래되지는 않았다. 서양에서의 고전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1635년 프랑스 학술원(Académe Française) 창립 이후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결국 서양에서 고전이라는 말은 현대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양에서 사용하는 고전의 어원을 살펴보면 더 재미있다. 프랑스에서 먼저 출발한 개념이었으니 프랑스어로는 classique이다(프랑스어는 아직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모르니 패쑤, 뎅장. ㅋㅋㅋ). 이 프랑스어의 어원은 라틴어의 “classicus”(클라시쿠스)이다.

근데 이 라틴어가 재미있는 단어다. 라틴어 클라시쿠스는 ‘함대’(艦隊)를 의미하는 ‘클라시스(classis)’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이다. 고대 로마시대에 ‘클라시스’는 ‘군함의 집합체’라는 의미였고, ‘클라시쿠스’는 로마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나라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호를 지칭하는 말로, 로마에는 징세 제도가 있었지만, 군함은 세금이 아니라 기부를 모아 만들었기 때문에 나온 단어이다. 

한 마디로 ‘국가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가리켰다. Merriam-Webster라는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저 클라시쿠스를 이렇게 정의해 놓았다. “the highest class of Roman citizens, of the first rank”, 즉 로마 시민들 중에 가장 높은 계급이라는 말이다.

이와 관련돼 좀 더 이야기를 끌고 가자면 국가가 위기에 맞닿뜨렸을 때, 자기 자식-자식은 '프롤레스(proles)'라고 한다-밖에는 내놓을 게 없는 사람, 국가에 헌상할 것이라곤 프롤레스뿐인 사람을 '프롤레타리우스(proletarius)'라고 불렀다. 따라서 '클라시쿠스'가 재산이 있어서 국가를 위해 함대를 기부할 수 있는 부유층을 가리킨 데 반해, '프롤레타리우스'는 오직 자기 자식을 내놓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을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라틴어, '프롤레타리우스'에서 빈곤한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프롤레타리아트'라는 독일어가 생겼고, 그 후 유럽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오늘날 '클라시쿠스'는 '고전적', '프롤레타리아'는 '노동계급'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이 두 단어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옛 로마 문화에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 단어였으며, 생각해 보면 '프롤레타리우스'라는 형용사는 아픔이 깃든 말이였다.

결국 고전은 위기의 상황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위기를 뚫고 갈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것 말이다. 처음 출발은 재력을 가진 높은 신분의 사람이었지만 이것이 세월이 흘러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서양에서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나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 위기에 처한 상황이 되면 소위 재력가들의 기부 문화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럴 때 사용되는 말도 있다. 바로 Noblesse Oblige(노블레스 오블리제)이다.

이렇게 두고 보면 우리 사회에서 고위층이라고 불리는 것들 중에 소위 클라시쿠스는 한 명도 없다. 정치계이든 경제계이든 높은 위치에 있는 것들은 그저 양아치들 뿐이다. 그것도 쌩양아치들이다.

단어 하나 공부하다가 결국 현실로 돌아와 욕만 나온다, 늬믜.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