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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계급적 현실에서 자유롭지 않은 역사가들

지금까지 읽어던 책들 가운데 역사에 대해 이처럼 명쾌하게 이야기 한 사람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E. H. Carr의 책 보다 난 이 책이 훨씬 가슴에 와 닿았다. 왜? 역사는 진공상태도 아니고, 그 역사를 읽고 다시 쓰는 역사가 또한 진공상태가 아니가 때문이다. 


역사가에 대한 비판 없이 최선의 역사란 없을 것이다. 계급적 현실로 자유롭지 않는 역사가라는 인식이 있을 때에만이 역사는 제대로 쓰여질 여지가 마련되게 된다. 계급과 무관하다고 깝죽거리는 역사가들이 있는 한 우리 역사는 여전히 남겨진 피를 씻어내지 못할 것이다. 


읽은 지가 10년이 훌쩍 넘긴 책이지만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역사는 유동적이며 문제투성이인 담론이다. 겉보기에 이는 세계의 한 단면인 과거에 관한 담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에 얽매여 있는(대체적으로 월급을 받는) 연구자 집단이 만들어낸다. 이 연구자들은 인식론, 방법론, 이데올로기와 실천적 측면에서 일정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서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이 연구자들이 만들어낸 생산품은 일단 유통되면 논리적으로 무한히 이용되고 남용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그것은 주어진 일련의 권력 토대에 부합되고 지배 주변의 스펙트럼을 따라 역사의 의미를 구조 지으며 유포시킨다.” 

- K. Jenkins,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최용찬 옮김 (서울: 혜안, 1999),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