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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국가는 폭력이다


레프 톨스토이가 그의 책 『국가는 폭력이다』 에서, 책 제목과 같이 선언하고, “국가의 폭력과 관련된 지위를 거부하고, 세금 납부를 거부해야 하며, 새로운 형태의 체제를 건설하기보다는 스스로 품성을 바꾸고 개선해야 한다”고 권유했다. 아래 윤미향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의 글을 읽으며 톨스토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하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냐의 문제는 심각하게 어렵다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는 그것의 선악을 떠나 인간사의 한 존재방식이다. 국민과 국가의 경계를 통합적으로 일원화한 근대 국민 국가 체제 아래에서 더욱 그 지위를 강력하게 구축했었다. 그렇지만 본래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체제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바로 현시대의 국가 체제이다.  


어쨌든 이렇게 강력해진 국가는 그 권력으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국민이 양도해 준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믿고 권력을 준 국민들에게 폭력으로 보답했다. 이런 폭력 국가가 소멸하기 위해서는 한 국가의 차원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 차원에서 민중 주권이 기존 국가 권력을 대체할 때만이 가능한 일이다. 


윤 대표님의 글을 읽으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다. 이 따위 국가라면 없어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분 드러운 저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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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극복되었다고 생각했던 트라우마가... 

아픔이 극복되지 않았나봅니다. 

최근에 저는 악몽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럴진대, 정작 본인은 어떨지... 갑자기 내 남편이 너무 안됐습니다. 

가련하게 여겨집니다.


1993년, 결혼한지 채 6개월여 지났을 때, 신혼의 꿈을 꾸고 있을 그 때에...

어느 날 저녁 이삿짐이 빠져나간 듯 그렇게 신혼집에 짐들이 휑하게 털려 있었습니다.

남편은 온데 간데 없고, 연락도 없고.

제 뱃속에는 우리의 아이가 발길질을 해대고 있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생각하며 여기저기 수소문 해보니, 

오후에 남편과 약속을 했던 사람한테서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분명 12시경 전화를 했을때 약속장소에 나갈 것이라 했는데...

시누이도 직장에서 이상한 사람들한테 붙잡혀간 이후로 소식이 없다며 

시어머님이 전해주었습니다. 


그리고... 한밤중에 전화가 와서 치안본부에 있다며, 

곧 갈테니 걱정말라는 모기소리만한 목소리...무슨 꿈같은 그런 전화한통화를 받고.

이미 치안본부는 옛날에 없어진지 오래니...

다음 날부터 경찰청이라는 곳, 대공분소라는 곳을 다 찾아다니며 남편을 수소문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대공분소가 그리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슨 주식회사로 위장해 있는 대공분소들도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내 남편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틀인가 지났을 때, 검찰청에 출입하던 기자가 연락을 주었습니다.

안기부에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정대협 일로 친분이 있었던 기자였습니다. 

그 기자의 전화를 통해 비로소 남편이 안기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KBS 9시 뉴스에서 남편을 봤습니다. 당시 아나운서였던 백지연씨가 

내 남편과 시누이를 남매간첩 우쩌고 저쩌고...

사진도 정말...이상한 사진을 화면에 띄워서 사람들로 하여금 

정말 간첩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배 부른 임산부가 그 날부터 안기부 앞에서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몇일 후 만난 남편은 이미 이상했습니다. 

눈동자는 마약을 먹은 사람처럼 빛을 잃었고.

뭔가 잔뜩 겁에 질려 제 눈동자조차도 바로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옆에서 안기부 직원들이 녹음을 하고 있었죠. 

그 안에서 남편이 당한 인간적인 모욕은 오마이뉴스에 쓴 본인이 직접 쓴 기사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그 때 틈틈이 남산 안기부로, 검찰로, 영등포교도소로, 대전교도소로... 뛰어디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에게 선비같이 선한 사람으로 찍혔던 사람이 ‘간첩’으로 조작되어버린 이후, 많은 추억이 담긴 신혼집에서 갓난 아기와 저는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정으로 옮겨 친정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인 투쟁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조작간첩 사건을 폭로하고, 관련 증인들을 찾아내고...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꿔놓은 그 사건은 국회에서, 국제사회에서 심각한 인권문제로, 안기부 프락치사건의 전형적인 문제로 확대되며, 확산되어 갔습니다. 대한변협에서 특별위원회까지 꾸려지고... 그러는 중에 우리 딸은 태어났습니다. 


4년 후, 남편은 감옥에서 나오고... 우리의 소중한 추억도 만들지 못한채

딸은 아빠품이 무엇인지도 모른채 자라고...

벌써 15년이 지났습니다. 

그 딸이 자라 올 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어느새 그 사건이 흐릿한 과거가 되어 잊혀져가나보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게 할까요? 

다시 저들이 나를 악몽을 꾸게 만듭니다. 


작년에 한 재일동포 사업가가 정대협을 후원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일제 시대에 일본으로 건너간 자신의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에 

텔레비전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이 나오는 것을 볼 때마다 나라가 힘이 없어서 저 할머니들이 저런 삶을 살았다며 가슴 아파 하셨다고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유산을 남겼는데 그 중에 조그만 정성을 매년 정기적으로 정대협에 후원하고 싶다고... 그리고, 지난 해에 박물관 건립을 위해 후원해 주셨습니다. 정대협이 열심히 활동해 주시는 것이 재일동포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깊은 칭찬까지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힘나는 격려였던지...

정대협 활동을 하면서 재일동포들의 한 서린 삶을 배우고 느끼고 있던 터라...

남편 사건으로 안보정권유지용으로 이용당해오던 재일동포들의 삶을 알고 있던터라...

마음 아프게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그 분이 사무실로 나를 찾아왔습니다. 

대뜸, 자신이 재일동포인데, 한국에서 사업이 성공한 것은 뒤에서 안보관계자가 도와줬기 때문이라며.... 

얼마 전에 일본대사관에 가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 안보관계자가 ‘친북’ ‘친조총련’ ‘반안보적인’ 단체에는 후원하면 안된다고 했다면서... 재일동포이면서 한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공안의 말을 안들으면 안된다고 했다고.

약속을 해놓고 후원할 수 없어서 미안하다면..


그 분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쁜 놈들.... 

위치가 약한 재일동포를 이용하여 공안정치를 해대고 있는 놈들...

그래서, 괜찮다고... 약속이야 지키지 못하셔도 좋다고. 

단지... 가슴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이런 처지를 이용해서 후원하면 안된다고 했던 그 사람들에게 화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사무실을 떠난 후, 고개를 힘껏 내저으며 잊자 했습니다. 잊어버리자 했습니다. 


그런데... 실상은 알고 보니, 윤미향 남편이 간첩이라며...정대협의 대표가 윤미향이어서 후원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저와 가까이 지내는 두 사람에게 이야기 했다는 소리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알 수 있었습니다. 윤미향이 정대협 대표를 그만 두면 정대협을 계속 후원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까지.


공안관계자? 국정원 관계자이겠죠? 

그 작당들이 재일동포 사업가에게 남편이 간첩이라며 이야기했다고 하니... 

또 한번 우리 가족이 난도질 당하는 것 같습니다.

말로는 정대협이 친북, 친조총련, 반안보주의 단체여서 후원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나와 남편때문이라니...


이 사건을 이대로 두면 안되겠는데...싸우고 싶은데...

제가 전면적으로 싸우면 이 분이 다칠 것 같아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잊어버리려 했습니다. 묻어두자 했습니다. 

정대협이야 그 사람이 후원안한다 해도 후원회원들도 있으니 염려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잊혀지지가 않습니다. 몇일째 계속 악몽을 꿉니다. 

아침에 일어나 눈뜨면 무슨 꿈이었던지 생각이 안나는데, 잠자면서 계속 소리를 질렀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몸이 천근만근 무겁습니다. 

어제 밤에도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설쳤습니다. 


그래서 다시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나를 치료하기 위해서. 

내 남편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공작정치를 여전히 일삼고 있는 그 작당들과 어떻게 싸워야 할지 고민을 좀 해봐야겠

습니다. 

그 시작으로 오마이뉴스에 제 남편이 쓴 기사를 먼저 올렸습니다. 


저는 정말 여한이 없이 살았습니다. 

정말 후회할 여지없이 열심히, 굵게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제 스스로에게, 제 딸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이제 또 새로운 꿈을 꿔보고 싶습니다.


나쁜 놈의 새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