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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목사들이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만나려 한 까닭은


어제 밤 늦게 “우근민 제주도지사”를 면담하기 위해 도시자 집무실 소회의실을 점거했던 사건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던 기사(기사 원문: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17773&PAGE_CD=12)가 점심 때가 다 되어 올라왔다. 오전 즈음에 올라올 줄 알았는데 시간이 미뤄지고 있길래 “내부 논의가 많은 모양이다” 싶었다. “실명들이 거론 되어 부담스러운 모양이다”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한편으로 이번에는 기사가 안 뜰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어쨌든 기사가 올라와서 다행이고 제주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한 단면이 알려지게 되어 다행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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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늦가을 즈음이었다. 느즈막이 새로 들어간 대학에서 단과대학 학생회장을 하게 되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같은 전공을 두 번째 공부한다는 것이 여러 학우들에게 안정감을 주었던 모양이었다. 어렵지 않게 학생회장에 당선되어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연말에 선출되어 봄 학기가 시작될 무렵 가장 큰 행사는 MT를 가는 일이었다. 많지 않은 학우들을 이끌고 갈 생각을 하니 사실 막막하기도 하고, 일을 누구에게 잘 맡기지 못하는 유형이라 하나부터 셋까지 내가 다해버렸다. 그렇다고 임원들이 능력이 없거나 한 것도 아닌데 그랬다.

그렇게 준비하고 출발한 MT는 역대 사상 가장 많은 인원이 동원되었다는 평가에 내심 흐뭇해하며 첫날 밤을 보내고 그럭저럭 둘째 날 밤을 맞이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준비해 간 모든 간식들이 동이 나고 학우들은 뭔가를 내어 놓으라고 아우성이 빗발칠 무렵 장소 대여를 했던 캠핑장의 소장님을 만나러 올라갔다.

소장님께 최대한 공손하게 “지금 학우들이 뭘 좀 먹고 싶다고 하는데요, 구할 수 있는 것은 현재 라면 밖에 없어서요. 어려우신 건 알겠지만 혹시 캠핑장 식당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임원들이 뒤처리는 깔끔하게 해 놓고 내일 아침 식사 준비하시는데 지장 없도록 정리하겠습니다.” 글을 이렇게 썼지만, 지금에서 그때를 기억해 봐도 훨씬 더 공손하게 말씀드렸다.

그런데 소장님은 내 이야기가 마치자마자 준비되어 있다는 듯이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의 심성은 삼 세 판 아닌가. 정말 세 번을 간곡히 부탁드렸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것이었다. 이 성질 머리에 그때부터 나이도 한참 어린 내가 소장님을 향해 쌍시옷 자만 들어가지 않았지 엄청나게 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옆에서 가만히 지켜만 보던 총무를 맡았던 후배 녀석이 나를 말리고는 소장님을 모시고 저만치 가는 것이 아닌가. 나 때문에 성질이 나신 소장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표정만은 아주 부드럽고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소장님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나한테 다시 돌아와서는 “소장님이 식당문 열어 주시기를 했어요, 형.” 순간적으로 뭐지 하다가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식당을 개방해 주시기로 하신 소장님께 죄송하다는 사과의 인사말과 함께 깍듯이 인사를 드렸다.

후배에게 “뭐라고 했냐?” 물었더니, “소장님, 회장님이 성질부린 것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형이 참 좋은 사람인데 학우들 걱정 때문에 잠시 이성을 잃었던 것 같습니다. 소장님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한 해 두 해 볼 사이도 아니고 이렇게 사이 벌어지면, 저희 다음에는 여기 다시 못 오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한 번 봐 주세요.” 했단다.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싸움하는 인간 따로 있고, 협상하는 인간 따로 있구나. 어디 가서나 나쁜 역할을 하는 인간이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어떤 사안이 밀어닥칠 때 누군가는 앞에 서서 싸워야 하고 막아 내줘야 한다. 그래야 협상의 이유도 생기고, 여지와 공간도 마련되는 것이다. 그런 싸움의 현장에 있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이와 다르지 않다. 이미 공사를 시작한 정부와 해군, 삼성물산과 대림건설은 연일 화약을 반입해 구럼비를 파괴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정마을 주민 분들과 구럼비를 지키고자 하는 평화활동가들, 그리고 가톨릭, 불교, 원불교, 개신교 등 온 나라의 종교가 일어나 한 목소리로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사람을 파괴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구럼비 파괴를 중단하고 더 나아가 제주도가 평화의 섬이 되기 위해서는 해군기지 건설계획 자체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단순한 외침이 아니다. 강정마을에 사람이 이 땅에 있기도 전에 있어 왔던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를 지키려는 노력은 목숨을 건 사투이다. 아침마다 싸이렌이 울러퍼지면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화약을 반입하려는 트럭이 구럼비 바위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공사장 입구에 드러누워 자신들의 목숨을 담보로 구럼비를 지키고 있다.

이렇게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강정마을 주민 분들과 구럼비를 지키려는 평화 활동가들, 종교인들이 그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으면 누군가는 이들의 목숨을 건 싸움을 담보로 협상에 나서야 하는 것이 당연한 순리이다. “협상”이라는 말이 과격하고 천박해 보인다면, 이들의 싸움이 정당한지 살펴보고, 정당하다면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하는 것이 정당한 자기 위치이고 역할이다.

그렇다면 이 싸움의 정당성을 평가하고, 정당하다면 싸움을 하고 있는 주체들의 이야기를 대변해 협상을 주도해 가야 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우근민 제주도지사”이다. 그렇다면 우 지사의 행보는 어떠한가? 이러저러한 평가 이전에 우 지사에게 더욱 힘 있게 강정마을을 대변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12명의 목사들과 한 명의 평신도 집사가 3일(화) 오후 4시를 기해 우 지사 집무실과 같은 방에 위치한 소회의실을 점거했던 것이다.



점거가 시작되자마자 목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나타난 인물은 “김영주 비서실장”이었다. 점거에 들어 간 목사들은 김 비서실장에게 “여러 가지 일로 바쁘신 줄 알지만 단 5분이라도 좋으니 직접 대면해서 강정마을 주민 분들과 한국기독교장로회 교단의 입장을 전달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 주십시오” 하며 간곡하고 정중히 부탁드렸다. 하지만 김 비서실장의 시종일관한 대답은 “절대 만나게 해 줄 수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일정에도 없는 면담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바쁜 도지사님께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대답만 되풀이되어 돌아왔다. 상황이 이 정도가 되자 이에 대한 목사들의 대답도 시종일관이었다.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려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달하고 체포되어 있는 동료 이정훈 목사에 대한 석방을 바라는 마음을 직접 전달하고자 한다. 우 지사를 해코지 하려는 마음으로 들어 온 것이 아니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김 비서실장은 이렇게 요구하는 목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해 주었다.

“도지사님이나 도철 실무자들도 강정마을 주민 분들과 종교계의 요구를 잘 알고 있습니다. 공사 중지 명령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카드를 쓰고 나면 다음은 뭐가 남습니까? 지방 자치 단체 중에 중앙정부와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준비하고 있는 것은 저희들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소송에서 패소하게 되면 어쩌겠습니까? 저희들도 여러 법률자문을 구하고 있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그러자 목사님들은 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그러는 사이에 계속 파괴되는 구럼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리고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강정마을 주민 분들과 평화활동가들에 대한 경찰의 폭력사태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이런 파괴와 폭력을 막기 위해서라도 중지 명령이 먼저 내려야 합니다. 그리고 행정소송을 준비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나는 파괴와 폭력을 먼저 막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실랑이하기를 두 시간이 흘렀을까, 김 비서실장은 한 시간 가까이 자리를 비웠고, 다시 점거 장소로 돌와 와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목사님들의 요구를 도지사님께 전달해 드렸습니다. 내일(3월 4일) 오후 2~3시 사이에 만날 수 있도록 약속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만남 시간이 15분이 될지 30분이 될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 말을 믿고 돌아가 주십시오. 이렇게 버티시는 것도 9시까지입니다. 그 이후에는 강제로 끌어내겠습니다.”

이런 말을 남기고는 또 휭 하니 저녁식사를 위해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김 비서실장에게 목사들은 “내일이 되어 안 만나줄 수도 있는 문제가 아닙니까? 어떤 문건이라도 하나 만들어 주십시오” 하고 요구했다. 하지만 김 비서실장은 “그런 것은 절대 만들어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사님들께 이런 문제로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저를 믿고 자진해산해 주십시오.” “네, 그럼 김 비서실장님을 믿고 저희들이 점거를 풀고, 내일 다시 연락을 드리고 도청으로 우근민 제주도지사님을 찾아뵙겠습니다.”

하지만, 4일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김 비서실장에게 돌아온 대답은 “만나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런 일로 목사님들께 거짓말을 하겠냐"고 했던 김 비서실장이나, 만나기로 약속을 했던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목사들께 거짓말을 한 것이었고, 신뢰를 저버렸다. 점거에 나섰던 목사들의 반응은 “당연히 예상한 대답이었지, 뭐. 그런데 자신을 믿어 준 사람들에게 이게 뭐하는 경우야” 하며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약속된 시간이 되어 우 도지사를 만나기 위해 도청으로 찾아가는 발걸음을 그만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