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늘에 앉은 책들

플라톤의 『국가·정체(政體)』와 Man of Steel(맨 오브 스틸)

플라톤이 저술한 철학서이자 정치학 교과서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회자되는 『국가』라는 책이 있다. 고전이라는 것이 늘 그렇지만 누구나 이야기 하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 중에 하나가 바로 플라톤의 이 책이다. 한 후배의 말에 의하면 자신도 이 책을 읽지 않았고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헌책방에 판매하려고 했지만 헌책방에서마저 거부 당했다고 하는데, 이유인즉슨 이 헌책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쨌든 플라톤은 국가의 기원을 논하는데, 국가의 기원을 인간의 필요성에서 찾고 있다. 즉 인간은 아무도 자기 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 많은 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서로의 필요한 것들을 위해서 도움과 협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 해놓고 보면 꼭 생각나는게 “로빈슨 크루소”의 동화같은 책이다.

하여간 이러한 필요의 충족을 위한 첫 번째 것은 육체가 필요로 하는 의, 식, 주라고 했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를 위해 분업과 교환의 원칙에 입각해 동반자와 협력자들이 일정한 주거지에 모여 경제적 사회를 형성했을 때 그 사람들의 조직체를 국가라고 했다.

그러나 때로는 이 국가가 거대해질 때 사람들의 물질적 욕구와 충족이 비례해 거대해짐으로써 내적 불안과 외적 전쟁 등의 위협 또한 거대해진다고 한다. 때문에 국가는 건강과 균형을 잃고 해체될 위기에 놓이게 되며 부정국가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말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국가”이다.

그러나 사실 책을 읽어보면 어떤 정치체제가 올바른 것인가를 논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로 번역하기 보다는 “정체”(政體)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좋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나도 이 의견에 동의한다. 여러 정치 체제에 대한 갑론을박이 난무하고 결국 그래서 이런 정치 체제가 좋다는 것으로 논의가 흘러가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플라톤 연구로조예가 깊은 한 학자는 아예 책 제목을 『국가·정체(政體)』라고 병기해 놓았는데, 기존의 번역어를 버리고 바꾸기에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어쨌든 플라톤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으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 한 ‘철학자 왕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주장을 중심에 놓는다.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이야기 한 철학자 왕들은 단순히 철학을 공부하는 자들이 아니라 좋음이 무엇인지를 아는 자들, 즉 좋음의 형상에 관한 지식을 지닌 자들이라고 했다. 이런 오해, 즉 철학자 왕이라는 말이 철학자들로 오해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이는 오랜 세월 철학이라는 단어 자체가 변화를 거듭하면서 플라톤 시절의 말과 그 뜻이 멀어져 버려 생겨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여간 플라톤 혹은 소크라테스가 주장하는 좋음에 관한 지식은 수학과 과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 철학이 단순히 사변적인 형이상학을 다루는 오늘날의 철학이라 아니라 학문 전반을 다루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좋음이라는 도덕적 지식이 학적 토대에 근거함으로써, 도덕적 믿음이 사회적 산물인 이상 어떤 도덕적 지식도 참으로 볼 수 없다는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여기서 철학자 왕들이 행하는 것은 정치 체제를 구축하는 것, 특히 교육 프로그램을 새로이 짜는 것으로 등장한다. 철학자 왕들의 좋음에 관한 지식이 시민들에게 유익하도록 기능하는 방식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플라톤의 영혼론에 의존하는데, 여기서 영혼이란 우리의 의식과 감정, 욕구와 결정함이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플라톤의 영혼론에 따르면,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세 종류의 욕구가 있다. 먹고, 마시고, 돈 좋아하고, 섹스를 하려는 육체적(물질적)인 욕구와 명예나 승리, 또 좋은 평판을 얻으려는 기백적인 욕구, 그리고 지식과 진리에 이르려는 지적인 욕구가 그것이다. 어느 욕구가 그 사람을 지배하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또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욕구에 의해 지배되기 때문에 좋고 나쁨에 관해서도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고, 또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에 관해서도 서로 다르다고 한다. 그런데 어떤 유형의 욕구가 영혼을 지배하느냐는 자신의 욕구들 간의 상대적인 힘의 정도와 그가 받은 교육에 달려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교육의 핵심 목표는 지식 제공이 아니라 사람들의 욕구를 참된 행복의 추구 쪽으로 인도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하는 것이, 너무나도 익숙한 “동굴의 비유”이다. 이 책 제7권에 위치해 있다.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욕구의 족쇄에 묶여 있는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은 오직 좋음의 그림자들만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진짜 좋음이 아니라 좋음과 유사한 것들 혹은 좋음을 닮은 것들, 좋음의 유사품들만 본다는 것이다. 교육 받지 못한 자들은 좋음에 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좋아 보이는 것들에 이끌려서 일시적인 변덕에 좌우된다고 했다. 그들은 신체 단련과 읽기와 쓰기, 그리고 시가 교육을 받음으로써 육체적인(물질적인) 욕구의 족쇄로부터 어느 정도 풀려나고, 사회적 요구에 따르게도 된다.

적어도 신중하게 행하며, 욕구를 당장 충족시키려는 속박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런 사람들을 ‘돈을 좋아하는 자’라 부른다. 자신들의 욕구를 오랫동안 충족시킬 수 있는 믿을 만한 최선의 수단으로 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상위 단계의 교육인 수학은 물질적인 욕구가 아니라 적어도 기백적 욕구에 지배되는 사람들 이상이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기백적 혼에 따르는 자는 명예를 좋아하는 자로, 성공과 명예, 그리고 그것이 가져오는 찬사를 공들여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성공에 필요한 탁월함(덕)에 관한 참된 믿음들을 갖는다고 했는데, 이때의 탁월함은 ‘정치적(시민적)’ 탁월함(덕)이다.

마지막으로 한층 더 심화된 교육인 변증법은 소크라테스식 논박에서 유래하는 철학적 훈련이라고 했다. 변증법은 오직 지적인 욕구들에만 따르는 자들이 받을 수 있는 교육으로, 나라의 경영권도 이 변증법을 교육받은 지적인 욕구들에 따르는 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은 단순히 육안으로 좋음의 그림자들을 보는 게 아니라 지성으로 좋음을 보는 사람들이며 이들이 바로 지혜를 좋아하는 자들, 즉 철학자들로서, 탁월함을 알기 때문에 탁월한(유덕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이러한 구분에 따라, 타고난 욕구의 성향과 교육을 통해 생산자, 수호자, 철학자 왕들이 정해진다고 보았다. 생산자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지만 육체적인 욕구를 신중히 참을 수 있는 사람들로, 자신들의 생산품을 수호자들의 보호와 철학자 왕들의 지식과 바꾼다. 세 계급은 동일한 재화를 두고 다투지 않으므로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구상된 것이다.

신기한 게 이걸 분명하게 보여주는 영화 장면 하나가 있는데, 바로 “Man of Steel”(맨 오브 스틸)이라는, 흔히 알고 있는대로 슈퍼맨 이야기이다. 슈퍼맨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았던 크립톤 행성의 정치체제이다. 유전자의 분리를, 유전자라는 것이 이미 정해져 있는 어떤 정보라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이를 성향으로 대치해도 무방하다, 통해 아이들은 배양되고 자신이 맡을 임무를 가지고 태어난다.

어쨌든 플라톤이 제시한 올바른 정치체제의 한 단면이 이러한 것인데, 이러한 정치 체제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탁월한 자(유덕한 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이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참된 행복을 추구해서 획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영화는 이것이 처참하게 무너진다.

그러면서 영화 초반부에 살해당한 슈퍼맨의 아버지 조엘이 등장하며 이런 대사를 읊조린다.

“This is a genesis chamber. All Kryptonians were conceived in chambers such as this. Every child was designed to fulfil a pare-determined role in our society as a worker... a warrior, a leader and so on.

Your mother and I believed Krypton lost something precious. The element of choice, of chance.

What if a child dreamed of becoming something... mother than what society had intended for him or her? What if a child aspired to something greater? You were the embodiment of that belief, Kal. Krypton's first natural birth in centuries.”


“이것이 탄생실이다. 모든 크립톤인들은 이 같은 탄생실에서 태어났었다. 아이들은 사회에서의 역할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일꾼... 전사, 지도자, 전부 말이다.

네 어미니와 나는 크립톤이 뭔가 중요한 걸 잃었다고 생각했다. 선택과 기회.

만약 아이가 태어날 때 사회가 준 역할이 아니라 무언가 다른 것이 되고 싶다면? 만약 아이가 더 위대한 것을 열망한다면? 그 믿음으로 만들어진 게 바로 너다, 칼. 수백년 만에 크립톤에서 처음으로 자연출산을 한거다.”


플라톤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면으로 부정하고 파괴한다. 예전에 이것으로 필자가 글을 썼을 때는 이 대사를 미국의 전 대통령 ‘오바마의 이상’으로 표현했는데, 플라톤의 논리를 파괴하는 것으로 읽어도 좋겠다 싶다. 정해진 것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과 기회를 통해 자신을 이루어가는 정치체제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로 들렸다.

또한 이 영화에서 유난히도 강조되는 것이 아버지의 모습이다. 슈퍼맨의 육체적 아버지 ‘조엘’이나 정신적 아버지 ‘조너선 켄트’는, 특히 지구에서의 아버지 조너선 켄트는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이상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마치 플라톤이 이야기 한 철학자 왕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이러한 완벽한 아버지들 밑에서 자란 클라크 켄트 혹은 칼엘은 또 하나의 이상적인 왕이 되어 간다.

어쨌든 플라톤이 기획한 나라는 도덕적인 이상인 동시에 분별적인 이상이며, 가장 올바르면서도 가장 행복한 나라이다. 그리고 이것이 책에 등장하는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에 의해 재개된 트라시마코스 논변에 대한 플라톤의 맞대응이다. 올바름과 행복이 같이 가는 것이라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온 나라가 ‘좋음을 아는 지성’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올바르며, 그때에야 비로소 잘 살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