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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서 손으로

어느 한 여성 장애인의 죽음...


내 블로그에 내 글이 아닌 글을 올리는 경우는 몇 번 없었다. 아니 이번이 첫 번째인 것 같다. 읽다가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난 그래도 행복한 인간이구나” 하는 이기적인 생각까지도 들고. 예쁜 아이 키우며 살고 싶었던 것이 유일한 그녀의 희망이었을텐데, 그것이 그렇게 힘든 일이었다는 것이 미안하다. 

장애가 무슨 죄이겠는가. 장애를 죄로 여기는 이 따위 사회가 죄가 많은 것이지. 아이가 걱정이 된다. 어디를 가든지 잘 자랐으면 좋겠다. 그리고 힘든 세상을 달리한 그녀에게 평안한 안식이 있기를 빌어본다. 아래 글은 박경석 장애인 노들 야학 교장 선생님이 쓰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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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가 작년 여름에 자기 아들과 노들장애인야학에 놀러와서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녀는 20대 초반에 노들에 와서 함께 공부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결혼도 했다. 그리고 야학은 그만두었다. 

아이를 낳고 가정폭력으로 이혼했다. 작년 여름에 다시 아들과 야학에 놀러왔을 때는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를 키울 걱정에 한참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이후 강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을 하면서 돈을 스스로 벌면서 부모님 집에서 아이를 키웠다. 3월26일 서울역에서 최옥란 열사 10주년 투쟁에서 만난 것이 마지막 모습이다. 

4월6일. 오전에 농성장에서 영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왜... 류마치스 고통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었다한다. 어두운 밤에 고통 때문에 친정엄마에게 문자를 쓰다가 말고 눈을 뜬 상태에서 죽었다 한다. 자기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병원에 입원하라는 것을 거부하고 집에서 고통을 참고 아이를 돌보다... 그 고통의 밤에 아이를 방에 두고 죽었다. 눈을 뜨고. 

그녀의 집에서 그녀를 의학용으로 병원에 기증했다. 곧바로 기증하려는 것을 활동가들이 빌어서 하루만이라도 같이 있도록 해달라고 해서 다음날 장례식도 없이 얼음에 쌓인채 병원을 시신은 넘겨졌다. 아빠는 연락도 되지 않았다 한다. 영주의 아이는 시설에 보내겠다고 한다. 아이를 돌보기 위해 고통을 참고 병원에도 가지 았는데...

견딜수 없는 고통에서 이제 그녀의 사진을 본다. 

류마치스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던 장애여성. 이혼 했지만 아이를 지키면서 키우기 위해 온힘을 다했던 그녀는 29의 나이에 그렇게 갔다. 그렇게 갔다. 노들에 왔을 때 그 웃음이.. 살고자 했던 그 고민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그렇게 가버렸다. 

이 터질것같은 먹먹함을 어찌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