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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카프카, 반항과 갈등 그리고 죄의식


Franz Kafka(프란츠 카프카)는, 딱히 어떤 문학평론가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문학사에 있어서 비교하기가 어려울만큼 독특한 인물이고 작품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싶다. 내가 처음 읽었던 카프카의 <변신>은 첫 장에서부터 “이게 도대체 뭐야?” 했었다. 물론 좀 어린 시절에 읽어다곤 하더라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소설이었다. 

한 2년 전인가, 어떤 이유에서 손에 들게 되었는지는 이유가 잘 기억이 안 나지만, 다시 읽을 때도 그 느낌이 딱히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철이 좀 들어서 그런지 예전만큼의 기괴함이 아니라 뭔가 모를 슬픔까지 느껴지는 묘한 경험을 하기는 했다. 명작이라고 하는 책들이 늘 그렇지만 카프가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그의 정신 세계를 직접 만나서 듣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어쨌든 카프카는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계 부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학시절 <어느 투쟁의 기록>이라는 작품을 집필할 만큼 문학에 뜻을 두었으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국영 보험회사 노동자 산재보험 공사에서 14년간 직장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일이 끝난 밤 시간을 이용하여 필사적으로 글을 썼다고 하는데 자신의 내적 충동의 소리를 듣고 머릿속에서 작품을 구상했다가 깎이고 다듬어져 정리가 되면 한꺼번에 일필휘지로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창작활동을 지속했단다.

카프카를 대표하는 작품은 바로 <변신>이다. 1915년에 발표된 한편의 중편소설은 카프카를 대변하는 대표작이 됨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는 작품이다.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나니, 거대한 벌레로 변해버린 한 남성과 그를 둘러싼 가족들의 전말을 묘사한 줄거리이다. 

국내 작가 중에서는 이상과 비견될 만큼 다소 난해하고 읽기 어려운 작품으로 일컬어진다. 그러고 보니 이상의 작품을 읽을 때도 정말 기괴했었는데 카프카도 정말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카프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우리가 내면에 감추고 있는 ‘불안’을 스스로에게 되물어 볼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불안감을 내포하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감정을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지, 인간 내면에 감춰둔 본질을 끄집어 내주고 있는 작품이리라.

하지만 카프카의 작품은 뭔가 연속성이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 작품을 읽어보면 이렇고, 저 작품을 읽어보면 저렇고,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는데, 이런 의문은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닌듯 하다. 카프가를 전공한 학자들도 이런 생각이 많았던 모양이다. 카프카 문학에 스며있는 전기문학적 요소를 밝히는 데 주력을 해온 학자들의 연구결과에서 공통적으로 추출되는 것은 유대적인 영향관계이다.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로서 고통과 죄의 근원성을 구약시대의 유대민족의 수난사에서 찾을 수 있다는 학자들의 주장은 카프카 문학과 유대적 요소들과의 상관관계에서 찾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인간 삶의 핵심적 문제를 중심에 놓고 그 변용적 양상을 묘사의 주된 대상으로 삼아온 카프카의 문학적 화두는 구약성서의 “욥의 고통과 죄의 문제”(das Hiobproblem des Leides und der Schuld)와 직결된다고 한다.

이러한 유대적 요소는 카프카의 거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고 있단다. 어느 한 학자는 카프카의 작품 주인공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을 통하여 이스라엘(혹은 히브리) 종교문학과 탈무드의 영향을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카프카의 주인공들이 겪는 고통스러운 현실의 악몽을 통하여 반영되는 것은 수 천년동안 계속되어 온 유대민족의 추방과 방황의 역사 속에 침전되어 온 죄의식과 자기처벌의 심리적 컴플렉스라는 것이다.

유대적 전통과 카프카와의 관계는 매우 다층적인 것이긴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유대적 유산에서 나온 많은 요소들이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문학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해석의 방향이 통일되지 않고 있는 그의 작품의 많은 부분들이 유대적 영향관계 속에서 새롭게 해명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할 것은 카프카의 개인적인 경험 속에 축적된 유대적 전통성과, 그것에 대한 대립적 갈등양상인 것이다. 

이렇게 유대적 전통과의 관계에서 일관된 시점을 보여주지 못하는 카프카의 글쓰기는 구조적으로는 넓은 의미에서 자아와 현실이라는 두 개의 세계의 대립적 갈등을, 심리적으로는 반항에서 자기처벌로 나아가는 죄의식을 각각 중심축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카프카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것이 정통 유대적 전통 사상과 그것에 대한 반항과 대립적 태도라는 말이다. 유대율법의 의미에서 법이나 계율과 심판, 그리고 죄와 처벌은 카프카에겐 인간의 실존을 규정하는 현실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머릿속에 그리고 나니 카프카의 작품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하다. 참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람이었는데 그럴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녁에 궁둥짝 붙이고 앉아서 이래저래 논문들 읽으면서 이게 뭐하거야 했는데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카프카를 읽는 밤을 조만간 다시 한 번 가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