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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박남준 - 봄날은 갔네

봄날은 갔네 


- 박남준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아내에게 아이들에게도 버림받고 홀로 사는

한 사내가 햇살 속에 주저앉아 중얼거린다

십리벚길이라던가 지리산 화개골짜기 쌍계사 가는 길

벚꽃이 피어 꽃 사태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피어난 꽃들 먼저 왔으니 먼저 가는 가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 날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리야


꽃대궐이라더니

사람들과 뽕짝거리며 출렁이는 관광버스와

쩔그럭 짤그락 엿장수와 추억의 뻥튀기와 뻔데기와

동동주와 실연처럼 쓰디쓴

단숨에 병나발의 빈 소주병과

우리나라 사람들 참 부지런하기도하다

그래그래 저렇게 꽃구경을 하겠다고

간밤을 설랬을 것이다

새벽차는 달렸을 것이다


연둣빛 왕버드나무 머리 감는 섬진강가 잔물결마저 눈부시구나

언젠가 이 강에 나와 하염없던 날이 있었다

흰빛과 분홍과 붉고 노란 봄날

잔인하구나

누가 나를 부르기는 하는 것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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