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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에게 고향 사투리는 무엇일까?


울 엄니는 충북 음성군 출신이시다. 뒤에 면 단위까지 외우고 있었는데, 이젠 기억이 안 난다. 이런(ㅡ.ㅡ+). 그런데 울 아부지와 결혼을 하시고 1960년 쯤 서울로 탈출하셨다. 울 공포의 큰 누님이 1962년에 태어나셨으니 저 때 쯤일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울 부모님 살아계실 때 저걸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이 생각이 나네. 

어쨌든 그렇게 서울에서 큰 누님과 작은 누님까지 낳으시고, 65~66년쯤 내가 태어나고 자란 부산 달동네로 이사 오신 것 같다. 셋째 누님이 67년생이니 말이다. 여기서 넷째 누님, 나, 그리고 남동생까지 나고 자랐다. 지금은 고향 동네에 가족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다. 마지막까지 살고 있던 동생과 막내 누님도 멀지는 않지만 고향 동네를 떠나 다른 곳에서 살고 있다. 

내가 자란 달동네가 부산에서도 가난하기로 유명한 동네이기도 하지만, 부산 사투리 안 쓰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원래 살고 계시던 부산 분들과 1946년 부산 보수동에 정착해 있던 태극도 신앙을 가진 분들이 1955년 감천으로 집단 이주하면서 동네가 크게 형성되었다. 그런데 저 태극도 신앙인들 대부분이 충북 출신들이었다. 원래 태극도의 본산이 충북이었으니 말이다. 

여기에다 6.25 때문에 호남분들이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또 이주해 들어 오셨다. 그러니 원래 부산분들 보다 객들이 더 많은 동네가 되어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각 지방의 말들이 뒤섞여 버려 부산 말도 아니고 충북 말도 아니고 전라도 말도 아니고 서울말 비스무리 하게 되어 버렸다. 그래서 부산에 어딜 가서 부산 사투리 안 쓰는데 부산 사람이라고 하면 감천 출신이냐고 할 정도였다. 

2000년 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하기 전까지 고향을 떠나 본 적이 없던 인간이 서울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을 사려고 하다가 우연히 직원분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부산 출신이라는 말에 "어떻게 사투리를 안 쓰세요? 전 서울분일 줄 알았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말 다 한거 아닌가. 

어쨌든 울 엄니 그래도 충북 사투리를 간혹 쓰시곤 하셨다. 엄니가 39년생이시 60년쯤이면 21살이고 대략 20살 즈음에 결혼하시고 서울 생활에 부산 생활에 사투리를 잊어버릴실만도 한데 잊지 않으시고 종종 쓰셨는데, 부산 사투리는 알아 들어도 울 엄니 충북 사투리는 종종 못 알아 들을 때가 있었다. 웃긴다(ㅋ). 

그렇게 울 엄니 잘 쓰시던 말 중에 "들쩍찌근하다"는 것이 있었는데, 어릴 때 난 뭘 두고 저런 말을 쓰시나 했는데, 조금 자라고 보니 "달달하다"는 말을 저렇게 쓰시곤 하셨다. 저게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는 최근 얼마까지도 모르고 있었다. 부산 사투리에서도 못 들어봤고, 전라도 사투리에서도 못 들어 본 것 같아서 얼마 전까지 그냥 울 엄니 고향 사투리라고 여기고 있었다(ㅋ). 

그런데 얼마 전에 알고 봤더니 "달짝지근하다"는 말이 전라도 사투리였다. 결국 울 엄니께서 동네 전라도 분들께 배운 전라도 사투리를 엄니 나름대로 소화하셔서 저렇게 사용하셨던 게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엄니도 나름대고 고향 떠난 서러움에 어떻게 그 많은 세월을 견디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20살 즈음에 연애를 해서 결혼한 것도 아니고, 그저 집 안에서 하라고 한 결혼이었으니, 달달한 연애를 해 본 것도 아니시고, 정말 그냥 사는 것이었을텐데 말이다. 그렇게 아부지를 따라 나서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살아 오셨을 엄니의 삶에서 고향 말이라는 것이 무엇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 저녁이다. 고향 사람은 딱 서방 하나 뿐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게 긴 세월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한 때 알콜 없이는 사실 수 없었던 아부지, 늙으막에는 오른쪽 손에 풍이 들어 한 동안 집 안 생계를 돌볼 수 없었던 남편. 그럼에도 6남매 키워 내시고 아부지 병 고치시고 집 안 다 돌보시고. 그런 엄니께 고향 사투리가 무엇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는 밤이다. 

왜 이런 잡다한 생각이 들었나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밥을 먹어 빵빵한 배에도 불구하고 속에서 "들쩍찌근하게 먹고 싶다"는 느낌이 올라와 갑자기 "들쩍찌근하다"는 말에 필이 꽂혀서 이러고 앉아 있다. 엄니는 돌아가시기까지 고향말을 그리워 하셨을까 갑자기 그게 또 궁금해 지는 밤이다. 

사진은 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촬영한 사진을 찾았기에 올려본다. 사진에서 왼쪽으로 얼마 쯤 가면 내가 자란 곳이다. 겁나게 반가운 사진이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