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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에릭 홉스봄,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마르크스와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이야기들』 “지식인들에 관한 내 연구는 방대한 계획이다. … 나는 지식인의 기념을 주로 위대한 지식인들을 지칭하는 단어의 현재적 의미를 넘어서 크게 확장했다. 이 연구는 또한 나를 국가의 일정한 결정성으로 이끌었다. 보통 구가는 정치사회(즉, 어느 시대건 인민대중을 지배적 생산과 경제 유형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강제기구의 독재)로서 이해되며,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즉 교회, 노동조합, 학교 등과 같은 소위 사적인 조직들을 통해서 국가 전체에 걸쳐 행상되는 사회집단의 헤게모니) 사의 균형으로 이해되지는 않는다. 시민사회는 바로 지식인들이 행동하는 특별한 영역이다.”그람시의 이 언급을 Erich Hobsbawm(에릭 홉스봄)은 이렇게 해석한다. “강제적이고 헤게모니적인 제도들 사이의 균형으로서의 국가 개념은 그 자체로는 .. 더보기
몰리에르, 『타르튀프』 한 2주일 정도 습관이 된 것 같다. 하루에 해야 할 것들 다 마치고 방불을 끄고 방바닥에 엎드려 작은 스탠드 하나 켜고 아이패드로 그날 그날 손이 가는대로 세계문학책들을 읽는 것이다. 그러다가 새벽녘에 잠드는 것이 다반사고 머리를 툭 하고 얻어 맞은 것 같은 구절들을 만나면 포스팅 하게 된다. 오늘 새벽에도 스탠드 켜고, “어떤 책을 읽을까?” 하고 책들을 둘러보다가 첨 보는 제목이 있길래 머리말부터 차분히 읽는데 머리가 시원해졌다. 17세기 프랑스 출신의 극작가이자 배우였고 연출가이자 극단주이기도 했던 ‘몰리에르’가 쓴 『타르튀프』라는 희곡집이었다. 작가 이름도 그렇고 이 시대의 희곡집을 읽는 것은 처음이지 싶다. 어쨌든 그 당시 이 사람이 쓰고 연출한 희곡이 굉장히 문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특히 기.. 더보기
플라톤과 어거스틴의 각주에 불과한 인생이라니... 백두(A. N. Whitehead) 할배가 서양철학사를 가리켜 요렇게 말했다. “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A. N. Whitehead, Process and Reality [New York: The Free Press, 1978], 39) 좀 무식하게 번역하자면 다음과 같을게다. “유럽 철학 전통에 대한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정의는 유럽 철학이 플라톤에게 각주를 붙인 연속으로 이루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다른 책을 읽다가 이 비슷한 구절을 읽고 빵 터졌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In the .. 더보기
괴물, 내 안의 타자성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Wer mit Ungeheuern kampft, mag zusehn, daß(dass) er nicht dabei selbst zum Ungeheuer wird. Und wenn du lange in einen Abgrund blickst, blickt der Abgrund auch in dich hinein.” - Friedrich Nietzsche, 「선악의 저편」, 『니체전집 14. 선악의 저편ㆍ도덕의 계보』, 김정현 옮김 (서울: 책세상, 2002).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난 괴물과 싸워 본적이 없다. 그런데 괴물이 되어 있었.. 더보기
허수경 - 세월아 네월아 세월아 네월아 - 허수경 세월아 네월아 시정의 아픈 사내가 시정의 아픈 여자를 데리고 여자는 아가를 누런 아가를 데리고 하염없이 염없이 고구마를 튀겨 파는데 섬섬 바리시고 네여 도 닦듯 하염없이 튀김 기름 끓는 열반 속에 하얀 수련 열 듯 고구마는 솟아오르고누런 아가는 양털 보풀이는 싸묵눈길을 간단네 마징가나 은하철도 기름 열반 속 고구마 꽃잎에 뚝뚝 떨어지는 기름처럼 눈발은 잠 속을 녹아 세월아 네월아 하염없이 염없이 네 가면 병 낫더냐 나을 병 없이도 아픈 시정들이꺼먹꺼먹 튀겨내는 세월아 네월아아마 너라고 기름 열반을 바랐겠냐마는...... - 허수경, 『혼자가는 먼 집』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5), 91. 더보기
마르키 드 사드, <미덕의 불운> 오늘 아침까지 잠도 안 들고 해서 아침 7시까지 책장을 넘기다가 눈이 딱 고정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에서 매일처럼 듣는 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너도 그렇게 살아. 너라고 별 수 있겠니? 다 그렇게 사는거야...” 고고하고 높은 윤리관을 갖추고 살아가고픈 맘은 하나도 없지만 “어떻게 하면 잘 사는 길일까?” 하는 밥 먹여 주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은 멈추지 않아야 하지 싶다. 그마저도 놓치고 살면 “나”라는 인간은 완전히 쓰레기가 될 것 같아서이다. 지금도 가히 그 지경인데 말이다. 하기야 하루를 살아가시기에도 버거운 분들에게 참 재수없는 말이기도 하겠다. 어쩌랴, 이리 생겨 먹은 것을 말이다. 어제도 밤은 그렇게 흘러버렸다... “이상이 제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었고, 칭송받을.. 더보기
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 자유학생연맹 지도자를 역임했으며 후에 반전 공산주의자이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2차 대전 중 나찌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한 알렉산더 슈밥(Alexander Schwab)은 “Beruf und Jugend”(직업과 청년)이라는 논문에서 직업생활은 학문정신에 부응하지 않는다면서 직업생활을 찬성하지 않았다. 이 논문을 계기로 바이에른 자유학생연맹은 학문, 교육, 예술 및 정치, 이 네 개 ‘직업 분야’에 종사하는 것을 두고 과연 현실 도피도 아니고 현실 영합도 아닌 ‘정신적 직업’이 오늘날에도 가능한가를 타진하기 위해 베버를 비롯한 ‘전문가’들을 초청해 연속강연을 주최하기에 이른다. “직업으로서의 학문”은 이 연속강연의 하나이며 독일을 비롯한 세계의 정치·사회적 격동기에 직업으로서의 정신노동이 어떤 역할과 기능.. 더보기
사람은 영향사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어릴 때는 어떤 작품의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대화 내용 이면에 깔려 있는 사회현실, 인류의 정신적 고뇌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그런 것을 안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이런 저런 세상사 돌아가는 것도 알게 되고 머리에 쥐꼬리만한 지식도 쌓이게 되면 똑같은 책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 다반사이다. 헤밍웨이의『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유럽에서 파시스트 세력과 세계 진보 세력의 일대 격돌의 장이었던 스페인 내전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도, 톨스토이의『부활』이 러시아 전제군주에 대한 저항과 나아가서 종교나 법, 제도에 관한 근본적인 고민을 담고 있다는 것도, 헤세의『지와 사랑』이 인간의 오랜 숙제인 이성과 감성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저 .. 더보기
정호승 - 서울의 예수 시인 정호승은 1970, 80년대 대학가 주변을 중심으로 널리 사랑받는 이 땅의 대표적인 신진 시인의 한 사람으로 각인되었다. 이 시기 그의 시는 우리 사회 내부의 소외받은 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함께 현실의 비극에 대한 비판적 감성에 기반을 두고, 이로부터 추출된 민중적인 주제와 정서를 서정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그의 시적 특성은 산문적인 표현 방식의 확대를 통해 현실 비판적 인식을 강조하고자 했던 대다수 당대 참여 시인들의 경우와 는 확실히 다른 점이 있다. 즉 그의 시는 현실에 대한 관심에도 불구하고 서정시 본연의 요건과 태도들을 포기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래서 초기에 발표된 그의 시들이 대중의 폭넓은 이해와 사랑을 얻게 된 데에는 이와 같이 조화롭고 균형.. 더보기
자화상(自畵像) 윤동주와 서정주, 이렇게 두 시인의 사진을 나란히 놓는 것만으로도 기분 나빠하실 분들도 계시리라. 조국의 암울함을 자신의 고통으로 노래하며 지식인의 고뇌를 보여준 윤동주 시인.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살아간 친일매국노 서정주 시인. 그렇게 극과 극을 달리는 두 시인이 동일한 제목의 시를 쓰셨다. 자화상(自畵像). 이 두 시인에 대해 모르더라도, 시인의 이름을 지우고 시를 읽으면 시인이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쉽게 상상이 갈만큼 뚜렷한 자신들의 모습이 시 속에 들어있다. 어린 시절부터 두 시인 모두 참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들어 서정주 시인에 대한 삶을 조금 알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시집 모두를 버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좋아했던 시인의 삶이 그랬다는 것에서 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