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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지그문트 바우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하는거야! 2003년에 출판된 Zygmunt Bauman(지그문트 바우만) 할배의 『Liquid Love: On the Frailty of Human Bonds』(리퀴드 러브)라는 책이 있다. 바우만 할배는 이 책에서 ‘액체의 성질을 띤 유동적인 사랑’이란 은유를 통해, 사랑은 갈구하지만 상대에게 얽매이기를 두려워 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사랑관이 서구 사회 혹은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임을 이야기 한다. 2011년까지 10쇄가 발행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바우만 할배는 이 책에서 특유의 과감한 이분법, 이게 겁나게 욕 먹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쩄든, 그 이분법을 엮어 만들어내는 역설적 경구(“관계를 맺고 싶으면 거리를 둬라”, x면), 철학과 사회학을 망라하는 해박한 인용, 레비나스의 .. 더보기
제암스 조이스, Deficio, ergo sum / 실패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에 대한 간결한 입문서를 하나 읽고 있는데 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동생 중 하나의 증언에 따른 이야기였다. 26살 때까지 제임스 조이스는 “파리에서는 시인으로, 더블린에서는 저널리스트로, 트리에스테(이탈리아의 한 항구)에서는 연인과 소설가로, 로마에서는 은행직원으로 그리고 또 다시 트리에스테에서 아일랜드 독립당원과 교사와 대학 교수로서도” 모두 실패한 인생이었다. “a poet in Paris, as a journalist in Dublin, as a lover and novelist in Trieste, as a bank clerk in Rome, and again in Trieste as a Sinn Feiner, teacher, and University Pr.. 더보기
크눌프, 길고도 힘겹고 의미 없는 여행 중딩 1학년이나 2학년 때이지 싶다. 네 분의 누님 중에 몇 째 누님께서 읽으시고 방 한 쪽에 있던 책을 보았던 것이 말이다. 바로,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였다.누님들이 책을 좋아하셨던 터라 자연스럽게 내 손에 쥐어지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의 한 권이었다. 중딩이 읽기에는 어려웠던 책은 아니었지 싶은데, 그 당시에는 너무 책이 안 읽혀서 도중에 그만 두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 이후로도 다시 읽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런데 성격이 지랄맞아서 그런 책들은 끝까지 기억하고 있는다. 무슨 마음의 빚이나 짐처럼 싸매고 돌아다닌다. 그러고는 기회가 찾아오든지 내가 기회가 만들든지 해서 기억코 읽는다.사실 얼마 전에 『헤르만 헤세 시집』(송영택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2013])을 구입해 읽으면서, 그.. 더보기
서구인이었기에 가능했던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 욕을 할라고 치면 한도끝도 없는 책이지만, 어쨌든 100여년 전에 한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귀한 책이기는 하다.그냥 넘어가기 좀 아쉬우니까 욕을 한 마디 하자면 전형적인 서국 제국주의의 시각에서, 이제는 용어 자체도 평범하게 되어버린,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구절들을 읽으면, “아, 이게 서구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구나...” 싶을 때가 많다.대표적인 몇 구절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상적인 표정은 약간 당혹한 듯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다. 좋은 의미에서 볼 때 그들의 외관은 힘이나 의지력보다는 재치 있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조선 사람들은 분명히 잘생긴 인종이다. 체격도 좋다.” (24)“왕비 전하는 40세가 넘었으며 매우 멋있어 .. 더보기
박근혜 때문에 올 겨울은 시베리아다! 겨울 날씨 치고는 요즘 많이 따뜻하다. 방금도 복도에서 숨쉬기 한다고 잠시 나갔다 왔는데 그렇게 추운지 모르겠다. 그렇게 복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니 문득 소설 제목이 하나 떠올랐는데, 박완서 선생님의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였다.얼토당토한 연결이지만, 겨울 날씨가 따뜻할 때면 늘 기억이 나곤한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그리 따뜻한 것이 아니다. 한국 전쟁이 한 가족을 어떻게 파괴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려놓은 정말 수작이다. 박완서 선생님이 한 에세이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6.25의 경험이 없었으면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나도 느끼고 남들도 그렇게 알아줄 정도로 나는 전쟁 경험을 줄기차게 울궈 먹었고 앞으로도 할 말이 얼마든지 더 남아 있는 것처럼 느끼곤 한다.”그런 선생님의 경.. 더보기
『Derrida. A Biography』 - Benoît Peeters, 학자로 산다는 것... 1996년, 뉴욕에서 개최되었던 한 학회(Conference)에서 쟈크 데리다(Jacques Derrida) 슨상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단다. “As you know, traditional philosophy excludes biography, it considers biography as something external to philosophy. You’ll remember Heidegger’s reference to Aristotle: ‘What was Aristotle’s life?’ Well, the answer lay in a single sentence: ‘He was born, he thought, he died.’ And all the rest is pure anecdote.”- Beno.. 더보기
An Introduction to Third World Theologies 영국 캠브리지 대학 출판사에서 2004년에 출판한 “An Introduction to Third World Theologies”라는 책을 읽고 있다. 소위 제1 세계 백인 신학의 상대편에 서 있는 유색 인종들의 신학을 소개한 책이다. Latin America, India, East Asia, Africa(East and West), Southern Africa, The Caribbean 지역 신학들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여러 명의 저자들이 각 지역의 신학을 다루고 있다. 다른 저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라틴 아메리카 신학을 소개하고 있는 Jose Miguez Bonino(호세 미구에즈 보니노)는 유명한 해방신학자이시다. 마르크스주의 사회 분석의 그리스도교적 이용을 옹호했던 신학자이시다. 해방신학에 대해 .. 더보기
가수 박지윤과 보드리야르 할배 “나는 소비당한다, 고로 존재한다.” 가수 박지윤이 오랜만에 신곡을 발표한 모양이다. 별로 관심도 없던터라 뭐가 어쨌는지 알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 주에 후배 녀석이 이 음악영상을 틀어놓았길래 보자마자 대뜸 했던 말이 "쟤는 아직도 저러고 있냐?"였다.노래가 좋거나 음악영상이 좋아서 연결시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굳어진 이미지라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예가 박지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박지윤의 이미지를 처음 만든 것은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박진영이라고 한다. 웃기는 사실은 정작 본인인 박지윤은 그게 별로 였다고 한다.그러다가 소위 노래가 대박을 치면서 그대로 쭉 밀고나갔다고 한다. 내 기억이 맞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랑 착각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박지윤도 언젠가 한 번.. 더보기
한국 경제? 별거 아니었다! <Encyclopedia of Capitalism> 영국의 “Facts On File, Inc.”라는 출판사에서 출판된 『Encyclopedia of Capitalism』이라는 1,200쪽이 조금 안 되는 3권 짜리 두툼한 책이 있다. 제목에 걸맞게 자본주의에 관련된 학자들, 이론들, 국가들과 역사가 총망라 되어 있는 백과사전이다. 입이 떡 벌어지는 책이다.그런데 슬금슬금 책들을 넘기다가 희한한 것을 봤다. 일본 화폐단위인 “Yen”에 대한 항목이 보이길래 “당연히 있을 수 있지” 하고 생각하다가 “잠시만 그럼 “Won”은?” 하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예상대로 없다. 그러다가 또 생각이 다른데로 튀어 Index에서 “Japan”에 대한 항목을 보니 쭉 하니 제법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었다.하지만 예상대로 “Korea”는 개뿔 별거 없다. 세계 경제 12.. 더보기
마키아벨리 대 마르크스, 그래서 얻는게 뭡니까? 전유(專有, Appropriation)라는 단어가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일본식 번역어가 아닌가 싶다. 많이 쓰이는 단어인데, 가끔 저 단어를 번역해 놓고 나면 참 난감할 때가 많다.어쨌든 통상적 어법에서는 자기 혼자만 사용하기 위해서, 흔히 허가 없이 무언가를 차지하는 일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문화연구에서 전유는 어떤 형태의 문화자본을 인수하여 그 문화자본의 원(元) 소유자에게 적대적으로 만드는 행동을 가리킨다. 전유가 꼭 전복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렇게 사용될 때도 많다.그리고 이와 관련해 재전유(re-appropriation)라는 말은 문화연구에서 중요성하게 여겨진다. 재전유는 재의미작용(re-signification), 브리콜라주(bricolage)와 동의어로 쓰인다. 이것은 한 기호가 놓여 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