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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미술에 대한 열등감과 무제약적 앎의 의지 ​ 이건 사실 내가 다녔던 국중고딩 시절 교육 정책의 실패로 읽히는데, 음악과 미술의 고전은 서양의 것과 등가 관계였다. 한국 혹은 동양의 음악과 미술은 한구퉁이에 찌그마하게 부록처럼 달려 있는게 고작이었다. 지금이야 오리엔탈리즘이네 뭐네 할 수 있지만 그 나이 때 뭘 알아겠나, 그저 그러니 그런가보다 했고 서양의 것들이 사실 뭐가 있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고. 그러나 문제는 이게 한국이나 동양 그리고 서양의 것들은 막론하고 뭔가를 즐기고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저 교과서에 나오니 보고 공부하는 수준이었지 미술 작품들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는 게 쉬운게 아니었다. 음악은 그나마 라디오가 있어서 뭐라도 들을 수 있었지만 미술 작품들은 정말 교과서가 다였다. 거기에 가난한 도시 달동네 출신에 몸.. 더보기
cuncta fluunt ​ 드디어 ‘오비디우스’의 를 완독했다.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20세기 후반에 ‘제2의 오비디우스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는데, 그러고도 남을 작품이다. 그 이전 그리스 문학의 정점에 있었던 선배 문인들인, ‘호메로스’와 ‘그리스 3대 비극 작가들’과 견주어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 아니 그들의 영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영웅들의 전투장면은 호메로스가 환생한듯 했고,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장면은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부활을 보는듯 했다. 그나저나 그리스 고전을 호메로스부터 거의 시간 순으로 읽어오니 정말 보이는게 다르다. 그렇게 읽어오지 못했다면 호메로스의 환생이니 그리스 비극 작가들의 부활이니, 이런 수사를 감히 쓰지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 문학의 전승과 창조적 변주가 보인다. 마음이 뿌듯하다. 뎅장... 더보기
그때는 안 보이던 것들 ​ “정치신학은 신학이 구체적으로 사유되고 토론되며 확산되는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상황을 분석하는 작업에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실천(Praxis)을 요청하는 이론(Theorie)이 아니라, 기존의 실천을 놓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복음의 빛에서 재조명하는 일이다.” 햇수로 따져보면 20년 전에 읽었던 책인데 왜 그때는 이런 걸 못 보고 안 보였을까 싶다. 헛공부 했지 싶다, 뎅장. ㅋㅋㅋ 더보기
유명론 혹은 제목은 독자를 헷갈리게 장애인들을 위한 무료 한방 독립진료소에서 침을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요즘은 움직이는 것 자체가 고역이라 움직인다고 생각하면 그저 갑갑하고 한숨이 먼저 나온다. 어쨌든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커피가 생각나 물 끓이고 갈아놓은 커피를 거름종이에 옮기고 대충 85도 정도까지 물을 식혔다가 커피를 내렸다. 그것도 1분30초를 넘기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커피를 내려 첫 한 모금을 마셨는데 입에서 겨우 튀어나온 말이 “그래, 씨바 이 맛이야" 이런다. 이렇게 단순하고 무식하고 입만 열면 훌딱훌딱 깨는 인간이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뎅장. ㅋㅋㅋ 그리고 요즘 한참 빠져 살고 있는 움베르토 에코 할배가 남긴 『장미의 이름 창작 노트』를 읽는데 이런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온다. “혹 독자가 이 작품의 결론에 해당하는 .. 더보기
명예. 정의, 자유 그리고 변화 인문학 모임의 한 참석자는 아들만 둘이시다. 자신이 어릴 때는 집 안에 가훈이 있어서 늘 듣고 살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이 살고 계셨단다. 그러다가 가훈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들들에게 요즘 자주 해 주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다. “선택의 상황이 생기면, 명예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 연수로는 3년, 달수로는 17개월을 이어오고 있는 인문학 모임에서 읽은 책들의 힘이 아닐까 싶었다. 소포클레스 - 호메로스 - 호메로스 - 헤시오도스 - 헤로도토스 로 이어지는 고대 희랍 문학과 역사 책들에서 얻은 힘 말이다. 이런 고대 희랍 문학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를 시대 순으로 나열하라고 하면, - - 일 것이다. 물론 이 키워드는 그 문학들이 글로 정착되고 창작되던 시기의 중요했던 가치였을지.. 더보기
동서양의 뿌리깊은 여성폭력의 역사 동양이든 서양이든 고대문학에서 등장하는 영웅담,특히 아버지가 신으로 묘사된 부분을 난 여성폭력의 이야기로 읽는다.아버지가 신이었다는 말은 결국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는 말과 같다.그렇다면 여성이 폭력을 당해 태어난 아이가 특출한 능력으로그 사회에서 인정받은 사람이 되어 후대에 이름을 남긴 것이다.그러고 보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여성폭력에 대한 뿌리는 정말 깊다.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책들을 또 다시 읽고 나니 새롭게 보이는 부분이다. 더보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제목 속에 나타난 일본 식민지배의 잔재 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쓴,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에 대한 우리 말 번역의 제목은 거의 대부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되어 있다. 잘 알지도 못하지만, 독일어는 묵음이 별로 없다. 글자 그대로 발음하면 거의 대부분 맞다. 그래서 이 Werther도 베르테르로 읽으면 될 것 같은데, 독일어 단어 끝에 오는 er은 사실 글자 그대로 발음하면 안 될 때가 맞다. 단어 끝의 er 발음을 우리 말로 표기하면 어 혹은 r발음 약하게 해서 얼이 된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하다가 베르테르가 됐을까 싶은데, 이게 사실 일본식 발음이다. 결국 일본 식민지배의 산물이라는 말이다, 늬믜. ㅋㅋㅋ 일본애들이 종성의 자음 받침 발음이 태생적으로 안 되는 애들이다.. 더보기
사심 없이 준다는 것(증여), 자본주의를 파괴하는 한 방법 지난 20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 학문계를 풍미했던 여러 사상들의 밑바닥에 는 ‘증여 해석’의 문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통된 관심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마르셀 모스(Marcel Mauss)가 『증여론』에서 개시한 증여의 복합적 형태에 관한 인류학적 연구 이래, 바타이유(George Bataille),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르포르(Claude Lefort), 데리다(Jacque Derrida)를 비롯한 여러 학자들이 이 문제와 씨름했다. 이들 각자는 증여 행위의 인류학적 근거와 궁극적인 모티프를 찾아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바타이유는 축적 지향의 경제관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을 ‘파괴적인 소모’의 열정에서 증여의 본질을 보았다.레비-스트로스는 증여의 모든 역사적 체험을 구.. 더보기
나도 조화 따위는 거부할 테다...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는 사냥개를 데리고 다니며 사냥을 하는 어느 장군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런데 어느 날 돌을 가지고 놀던 여덟살짜리 아이가 실수로 사냥개에게 상처를 입히자 장군은 사냥개를 풀어 아이 어머니 앞에서 아이를 물어뜯어 죽게 만든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둘째 아들 이반은, 신앙이 깊은 막내 아들 알료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오, 알료샤, 난 신을 모독하려는 것이 아니야! (…) 그 어머니가 사냥개에게 자기 아들을 물려 죽게 한 가해자를 부둥켜안고 세 사람이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주여, 당신이 옳았나이다!’라고 절규할 때 이미 인식의 승리가 도래하고 모든 것이 해명될 수 있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고. 그러나 바로 여기에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난 그것을 용납할.. 더보기
진리의 출현, 포함과 배제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 탄생하는 것 “나의 취미는 성, 종교, 수학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오로지 수학에 대해 더 많이 알고자 하는 소망만이 나를 자살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야리꾸리한 이야기를 자신의 자서전에서 당당하게 밝힌 사람은 다름 아닌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그리고 평화주의자였던 버트런드 러셀 경이다. 그런데 이런 그의 경력에 대해 남들이 읽어도 겁나게 기분 나쁜 말을 했다.“머리가 가장 좋았을 때는 수학자을 했고, 머리가 나빠지자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철학도 할 수 없을만큼 머리가 나빠졌을 때는 평화운동을 했지요.”아~ 진짜 옆에 있었으면 가지고 있는 목발로 한 대 후려쳤으면 싶은 인간이다. 근데 어쩌랴, 러셀 옹은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의 업적과 저술은 산을 이루었는데 말이다. 뎅장. ㅋㅋㅋ하지만 그가 자신의 인생 여정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