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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백 년 동안의 고독 혹은 억지로 살아야 하는 백 년 어제 관람했던 Charlize Theron(샤를리즈 테론) 언냐 주연의 「The Old Guard」는 장르로 치자면 ‘Fantasy Action’물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세상에 실존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을 다루었으니 판타지이고 주된 것이 총격전과 육탄전이니 ‘액션’으로 보인다. 내 생각은 이런 데 누가 아니라고 하면 아니다. 어쨌든 고대 시대부터 죽지도 않는 인물들이 탄생했다. 일반인 같았으면 그냥 사망했을 상황에서도 부상당한 신체가 회복되어 몇 백년을 이어 살아가는 ‘전사’(Guard)들이 태어난 것이다. 이 전사들 4명이 어떤 사건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된 줄거리이다. 더 이상의 줄거리가 없고 이게 다다. 근데 제일 마지막 장면에서 큰 울림이라고 해야 하나 뭐 그런 것이 느껴졌다... 더보기
연기와 공 불교용어 중에 ‘아함(阿含)’이란 말이 있다.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의 음사어(音寫語)이다. 즉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의 발음을 한자로 옮긴 것인데 한자어 자체는 뜻이 없다. ‘아함(阿含)’은 아가마(āgama)의 음사어인데, ‘전승된 가르침과 그 모음’이라는 뜻이다. 아함모(阿含暮), 아급마(阿笈摩)라고도 한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과 또한 그 제자들의 해석은 당시의 중기 인도어로 암송되어 구전되었다. 이렇게 전승되어 오다가, 마치 신약성서의 복음서처럼, 내용이 정비되어 넷 또는 다섯 부분으로 된 아함경으로 집대성된다. 그러는 가운데 불교 또한 분열하여 부파불교 시대를 맞이한다. 이때 각 부파마다 아함경을 형편에 맞게 전하게 된다. 그 때문에 현재 전해지는 아함경은 전승한 부파.. 더보기
“옹졸하게 반항”할 수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 소위, 첫회부터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다는 드라마를 보려고 틀어놓았다. 하지만 5분도 안 되어서 그냥 종료했다. 재미없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파서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권력의 부패와 폭정에 신음하는 민중들의 역사적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보기 힘들었다. 끄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국사 과목을 왜 그렇게 싫어했는지 그제서야 새삼 또 깨닫게 되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이라기 보다는 더 커서 확인했던 근현대 국사가 난 참 아팠다. 그렇게 생각에 꼬리를 물고 김수영 시인의 “풀”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그런데 포스팅은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라는 시를 올리고 싶어졌다. 김수영 시인의 “풀”만큼 사회·정치사적으로 민중을 적나라 하게 표현한 시도 없는데 말이다. 하지만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우리네 삶.. 더보기
장애 여성에 대한 장애 여성에 의한 역사 “여성들은 역사의 주체였으면서도 기록되지 못하거나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되었으며, 그 때문에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역사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공통된 하나의 역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기록되고 해석된 과거이자 사실상 남성에 대한 남성에 의한 기록인 대문자 역사(History)와, 인류에 의해 수집된 과거의 모든 사건이자 다시 해석되어야 하는 소문자 역사(history)가 존재하며, 여성의 역사는 소문자 역사로부터 재발견되고 재구성되어야 한다.” - 거다 러너, , 강세영 옮김(서울: 당대, 2004) 이제는 거의 기초적인 이야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여성에 대한 여성에 의한 역사가 쓰여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이 떠오른다. 더불어 장애 여성에 대한 장애 여성에 의한 역사는 쓰여질 수 있을까 하는 .. 더보기
여저히 이해하지 못한 두 학자, 가다머와 데리다 학부 시절 내 머리를 온통 꽉 채웠던 네 명의 학자가 있었는데 ‘푸코’, ‘가다머’, ‘하버마스’, ‘데리다’였다. 욕을 바가지로 먹을 이야기이지만 푸코와 하버마스는 대충 뭐라도 잡히는 것 같았는데, 가다머와 데리다는 정말 뭔 말을 하는지 몰랐다. 뭐 지금도 나아진 건 없다. 어쩌면 그래서 푸코와 하버마스에 더 매달렸던 것 같다. 다 이해는 못해도 손에 잡히는 건 있는 것 같은 착각은 들었으니 말이다. 정말 착각이었다. 푸코를 이해하기 위해선 맑스 할배와 니체를 기본으로 깔고 시작하는데 이게 되겠나. 하버마스는 또 어떤가. 맑스, 프로이트, 거기다 하버마스의 명성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책이자 박사학위 논문에서 2/3 가량을 욕으로 가득 채웠던 막스 베버를 모르면 이해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 더보기
프레임과 패러다임 전환의 고통 한국사회에 꼴통들의 일상적인 Frame은 종북이었다. 그런데 지난 대선과 능동적이고 공격적인 대북관계 개선에 힘입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종북 프레임이 거의 기능을 상실했다. 프레임이라는 건 사물이나 일상을 해석하고 대하는 사고 틀이다. 어떤 한 프레임이 주류일 때 다른 프레임은 설자리가 없다. 다른 프레임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그 프레임이 틀렸다라는 인식이 자리잡아야 새로운 프레임의 탄생이 가능하다. 이제 종북 프레임이 사라진 자리에 평화 프레임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프레임의 교체는 Paradigm Shift와 유사하다. 그간 정상과학이 문제를 해결하던 상황에서 하나둘 해결되지 않는 문제점들이 등장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전 정상과학과는 다른 해.. 더보기
종교 브로커 없는 세상이 천국 역사적 예수 연구에 있어 우리 시대 최고의 거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천조국 로마가톨릭 신학자 존 도미닉 크로산. 그의 대표작이기도 한, . 이 책 내용은 정말 발군이다. 하지만 난 이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했지만 내용이 별로여서가 아니라 논의하는 방식이나 언어 자체가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번역되자마자 읽었을 때의 황당함과 황망함은 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어쨌든 역사적 예수 연구 분야에서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책은 바로 이 책과 게르트 타이센이라는 독일 학자가 저술한 라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타이센의 책을 좋아했다. 대학원에서도 스승님이 개설하신 세미나에서 한 학기 타이센의 책으로 공부하면서 정말 질리도록 읽었다. 근데 내가 크로산의 책에서 정말 죽을 때까지 못 잊을.. 더보기
국어사전 좀 잘 만들어라 또 돈 안 되는 일 좀 해봤다. 사전이라는 것이 단어에 대한 의미를 알려주는 책이다. 모르는 사람이 이해되도록 설명하는 친절함이 기본이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에 대한 뜻을 몰라 사전을 찾았다고 가정하자. 사전에는 이 사과 그 자체에 대한 묘사나 모양 등을 설명하는 게 사전 본래 기능에 충실한 것이다. 사진 등이 들어가는 것도 좋고 말이다. 다른 분들이 볼 때 사전 캡쳐한 사진 순서가 어떻게 보일지 몰라서 첨언해 두면 큰 사과 모양 사진이 있는 것이 Cambridge, 글만 잔뜩 있는 것이 Collins Cobuild, 여러 개의 사과 그림이 있는 것이 Oxford, 그리고 네모 상자 안에 설명이 있는 게 Merriam-Webster 사전이다. 문제는 국어 사전이다. 하나는 국립국어원 사전이고,.. 더보기
나체가 아니라 니체다 니체가 남겨 놓은 미출간 유고들과 니체 생전에 이미 출판된 책들까지 모두 학문적으로 철처하게 고증한 독일어 니체 전집을 한국의 니체 전공자들이 총출동해 거의 15년 전에 우리말로 번역해 출판했다. 한꺼번에 구입하기에는 책값이 무지막지 해서 한 권씩 구입해 읽는다. 우리말 니체 전집은 모두 21권이다. 지난 3달 전부터는 이른바 라고 알려진 유고집 3권을 읽기로 작정하고 전집의 순서로 19번 책을 구입했다. 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는 사실 니체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의 여동생과 매제가 엉뚱하게 편집해 출판한 책이다. 그래서 독일 고증판 니체 전집은 라는 단행본 형태를 없애고 연도별 유고 형태로 출판했고 우리말 니체 전집도 이를 이어 유고 형태로 19-21번에 배치해 책을 출판했다. 니체 학계에서는 .. 더보기
디트리히 본회퍼의 시, “선한 힘들에 관하여”(Von guten Mächten) 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 떄이지 싶은데, 현대신학에 관한 책을 한 권 읽다가 그곳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학자가 ‘Dietrich Bonhoeffer’(디트리히 본회퍼)였다. 그 이후로 내 공부의 모든 기준은 본회퍼가 되었다. 누군가를 책을 통해 알게 되고 사랑하고 존경하게 된다는 것을 난생 처음 경험했었다. 그의 사상과 삶에 곧잘 눈물을 흘리곤 했었다. 특히 그의 “옥중서간” 속에서 사람의 몸이 묶여 있을 수는 있지만 생각은 무한히 자유로울 수 있음을 보게 되었다. 자유로운 몸을 가진 사상가들보다 웅대하고 깊은 그의 사상은 마치 누군가의 아우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다가오는 죽음 앞에 연약해지는 그의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는 본회퍼의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표상이 되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