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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서구인이었기에 가능했던 조선에 대한 이야기들...


욕을 할라고 치면 한도끝도 없는 책이지만, 어쨌든 100여년 전에 한국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분명히 귀한 책이기는 하다.

그냥 넘어가기 좀 아쉬우니까 욕을 한 마디 하자면 전형적인 서국 제국주의의 시각에서, 이제는 용어 자체도 평범하게 되어버린, 오리엔탈리즘으로 가득 찬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 보고 있다.



그럼에도 몇몇 구절들을 읽으면, “아, 이게 서구 사람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구나...” 싶을 때가 많다.

대표적인 몇 구절만 소개하자면 이렇다. 

“일상적인 표정은 약간 당혹한 듯하면서도 활기에 차 있다. 좋은 의미에서 볼 때 그들의 외관은 힘이나 의지력보다는 재치 있는 지성의 모습을 보여 준다. 조선 사람들은 분명히 잘생긴 인종이다. 체격도 좋다.” (24)

“왕비 전하는 40세가 넘었으며 매우 멋있어 보이는 마른 체형이었으며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칠흑같이 검었으며 얼굴은 상당히 창백했는데 그 창백함은 진주빛 분을 발라 더욱 희게 보였다. 눈은 냉철하고 예리했으며 반짝이는 지성미를 풍기고 있었다.” (246)

“44세의 나이의 왕비는 한 우방 국가의 공사에 의한 피비린내 나는 음모에 자극을 받은 자객들의 손에 그렇게 죽어 갔다. 그녀는 영리하고 당당하며 매혹적이었던, 여러 면에서 아름다웠던 조선의 여왕이었다. (the clever, ambitious, intriguing, fascinating, and in many respects lovable Queen of Korea.)”(271)

- Isabella L. Bishop,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2000)

우리 역사 책 어디를 뒤져봐도 명성황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 부분은 없다.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한다고 해도, 명성황후를 알현한 후 기록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그리고 그 당시 조선 사람들을 몸으로 부대끼면서 관찰하지 않았으면, 그리고 중국과 일본 사람들을 체험하고 비교해 보지 않고는 이런 말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하여간 이 책이 가지는 미덕보다는 부덕이 내게는 더 크게 보이지만, 그나마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한 모습을 붙잡을 수 있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