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으로부터의 사색

엄마와 여자, 모순적 삶의 양식

Wortstreit 2013. 11. 26. 23:33

“카카오스토리”라는 SNS는 내가 느끼기에는 엄마들의 육아 일기장에 가깝다. 아가들과 엄마들이 일상에서 겪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올라와 보고 있으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특히 요즘은 동영상 기능이 추가되어 아주 어린 아가들의 몸짓이나 옹알이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엄마로서 혹은 여자로서 겪어야 하는 살짝 가슴 시린 이야기들도 있어서 한 번씩은 짠하기도 하다. 그 중에 하나가 아이를 늦게 가져 이제 돌을 갓 지난 아가와 살아가는 엄마와 여자로서 결혼 5년차가 된 여자 후배의 이야기였다. 아가가 어리니 그 동안은 육아 휴직을 하고 있다가 아가를 위해 아예 사퇴서를 쓴 사연이었다.


그렇게 사퇴서를 내고 돌아오는 길에 셀카를 찍고 사진을 올리며 이런 한 대목을 적어 놓았었다.


“나에게도 꿈이 있었다.”


한 달 전 즈음에 올라왔던 이야기였는데 그 녀석이 올리는 이야기들을 읽으면 늘 저 이야기와 오버랩 되어 마음 한 구석이 짠하다. 저 녀석만이 아니라 함께 공부했던 후배들에게도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 생명을 낳고 양육하고 그래서 책임감을 가진 어엿한 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일은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이지만, 자신 또한 한 존재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꿈과 희망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고 살아가야 하는 여자로서의 삶이 안타깝게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 생명의 어머니로서의 삶에 또한 충실하려는 모습은 세상 어느 삶보다 위대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라틴어에 보면 ‘modus’라는 단어가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mode’이다. ‘양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번씩 듣게 되는 라틴어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라는 말도 흔히 알려져 있듯이 ‘잠정협정’이라는 2차적 의미보다는 ‘생활양식’(뭔가에 알맞게 맞춰서 살아가는 방식)으로 먼저 이해되어야 정당하다.


어쨌든 좀 더 밀고 나가면 태생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사람에게 주어져 있는 양식에 맞춰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이라는 뜻도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생물학적으로나 사회구조라는 측면에서 떠 안을 수밖에 없는 양식에 맞춰 변형되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변형에 순응하든 저항하든 그것은 이차적으로 미루어두고서라도 말이다.


옛말에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자리가 사람 만든다.”


맑스 할배도 그러지 않았던가.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가만히 돌이켜 보면, 지나온 내 인생의 궤적은 주어진 삶의 양식에 늘 저항하고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저런 삶의 양식이 나를 옥죄는 것 같으면 늘 저항하거나 저항하는 것이 힘들어지면 튕겨져 나가거나 말이다. 한 마디로 하면 지 멋대로 산 인생이지 싶다.


차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어쩌면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아니라 남성이기에 조금 더 쉬웠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나와 같은 혈혈단신이 아니더라도 가정과 아이들을 모두 내려놓고서라도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 수 있는 것이 생물학적 남성이 좀 더 용이할지도 모른다. 물론 남성들도 그렇지만, 그보다는 몇 만배는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여성들이기에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방금 전에 확인한, 혼자서 영화를 보고 힐링했다는 제수씨의 이야기를 보면서 또 별별 생각이 다 들어 몇 자 끄적거리게 되었다. 아이들의 미소와 이야기에 더 없이 행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돌아서면 한 존재로서의 삶을 아쉽게 생각하는 여자로서의 엄마.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양식이라는 것이 굴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주어진 양식이 주기도 하는 행복이라는 모순적 행보가 참 낯설게도 느껴진다.


어렵다, 뎅장.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