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서 손으로

연대한다는 것, 그것은 나를 위한 일이다

Wortstreit 2013. 11. 10. 00:20

지난 2주 동안 그리스도교의 UN 총회라고 하는 WCC(World Council of Churches) 총회가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가고 싶은 맘을 먹었더라면 여러 경로를 통해서 참석했었겠지만 별로 마음이 땡기지 않아 그냥 소식들만 듣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안 가길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쨌든 총회가 열리기 2주 전 즈음인가 우연히 총회 기간 중 설치되어 운영되는 부스(Booth)들 중에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등 성소수자들을 위한 부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부스의 한국 측 총책임을 맡고 계시는 선교사님을 만나뵙게 되어 부스에서 전시되고 나누어줄 소책자(Booklet)가 이미 영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러시아어, 독일어로 번역되고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다가 속으로 “어? 한국에서 총회가 열리는데 한국어로는 왜 번역이 안 되는거지?” 했다.



하여간 이 놈의 오지랍이 문제다. 결국 입에서는 이미 “근데 한국어 번역본은 없어요, 선교사님?” 선교사님도 눈이 번쩍, 함께 옆자리에 있었던 형님 한 분도 눈이 번쩍. 두 분의 눈이 나를 향하고 있음을 느꼈다. 


“네, 제가 하겠습니다.” 뎅장. ㅋㅋㅋ


총회 때문에 떠 안았던 다른 번역들 부랴부랴 마무리 하고 하룻밤 만에 번역해서 보냈다. 양이 그리 많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고,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분들이 아니라 그리 어렵지 않아 또 다행이었다. 교정하는데 하루 보내고 결국 이틀만에 책자가 완성되어 나왔다.


교정 보는 사이에 책자 제작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형님께서 나에게 전화를 주셨었다. “한국어 번역자로 이름 올릴까요? 괜찮겠어요? 이 문제가 민감한 사안이라 이름이 밝혀지면 곤란할 수도 있을텐데요?” “형, 그런 문제라면 신경 안 쓰셔도 되요. 그런거 눈 하나 깜짝 안 해요. 더 걱정은 번역 왜 이따구로 했냐고 욕 날라올까봐 걱정이지요. 이름 올리셔요. ㅋㅋㅋ”



그렇게 마무리가 되고 총회가 열리는 사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어제 총회를 마치고 부스를 책임지고 있으셨던 행님께서 책자를 가져다 주셨다. 그런데 책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선물까지 딸려 왔다.총회 LGBT 부스의 총책임을 맡아 글을 모으고 출판을 담당하셨던, 독일의 Gabriele Mayer(가브리엘레 마이어) 박사님께서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카카오가 70% 함유된 독일의 유기농 초콜렛을 보내셨던게다. 오~ ㅋㅋㅋ


책자와 함께 선물을 받고 두 가지 재미있는 생각도 들었는데, 한 가지는 한국어로 총 1,000부가 제작되었는데, 한 권도 남지 않고 전부 나누어졌단다.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도 금기시 하는 한국 교회 상황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 관심들이 많구나 싶기도 했다. 또 한 가지는 마이어 박사님께서 보내신 짧은 감사 편지에 이모티콘이 재미있었다. 연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머가 있으신 분 같아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사실 난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 어떤 책임감이나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들의 성정체성 때문에 인권이 유린당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확신은 분명하다. 소수자들이기에 억압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내 입장에서 노력하는 것뿐이다.


이것이 어디 성소수자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세상에 자신들과 같지 않다고 폭력을 가하고 핍박하는 쓰레기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그렇게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내가 고난당할 때 아무도 나와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연대는 그런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우리가 연대하여 맞설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