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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에 앉은 책들

지그문트 바우만,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사랑은 변하는거야!

2003년에 출판된 Zygmunt Bauman(지그문트 바우만) 할배의 『Liquid Love: On the Frailty of Human Bonds』(리퀴드 러브)라는 책이 있다. 바우만 할배는 이 책에서 ‘액체의 성질을 띤 유동적인 사랑’이란 은유를 통해, 사랑은 갈구하지만 상대에게 얽매이기를 두려워 하는 현대인의 모순된 사랑관이 서구 사회 혹은 어느 한 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임을 이야기 한다. 2011년까지 10쇄가 발행되었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바우만 할배는 이 책에서 특유의 과감한 이분법, 이게 겁나게 욕 먹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어쩄든, 그 이분법을 엮어 만들어내는 역설적 경구(“관계를 맺고 싶으면 거리를 둬라”, x면), 철학과 사회학을 망라하는 해박한 인용, 레비나스의 윤리학과 인터넷 데이트를 넘나드는 필력을 과시해 주셨다. 바우만 할배는 상처—혹은 손해—입지 않을 만큼만 관계에 투자하려는 현대인의 ‘합리적’ 연애관을 이야기한 것이다. 손익계산이 분명하고 사랑의 ‘대상’을 대체 가능한 소비의 ‘대상’으로 여기게 된 유동적 근대의 바람직스럽지는 않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것을 빙자한 근대에 관한 책인 것이다.

바우만 할배가 펴내기 시작한 시리즈의 첫 책이기도 한 『Liquid Modernity』(유동하는 근대, 2000)에서 고형(solid)의 근대성과 구별되는 유동의 근대성이란 개념을 처음 제시했었다. 그리고 이 책 이후에 출판한 7권의 『유동하는』 시리즈 중 첫번째 저서가 바로 이 『리퀴드 러브』이다.

어쨌든 바우만 할배는 제목에 “포스트모더니티”가 들어간 연속되는 책들로 1990년대 떠오르는 포스트모던 사상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동하는 근대』의 출판을 계기로 ‘포스트모던’이란 개념을 버리고 ‘유동적’이란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가볍고 유동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바우만은 근대를 모든 “견고한 것들을 녹이는” 액화의 과정으로 규정짓고, 근대의 끝자락에 놓인 현재가 전통・안정성・공동체・유대 감・생산자 위주 생활방식을 가진 고형적 과거와 대비되는 유동성이란 은유로 적절히 표현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사실 ‘견고한 것을 녹인다’는 표현은 맑스와 엥겔스 할배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구절(“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에서 빌려 온 것이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바우만의 근본적인 문제는 맑스가 표면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액화의 과정만큼이나 강조한 “상품화와 착취의 영속적인 패턴들”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즉, 바우만 할배의 고체/유동의 이분법은 두 상태가 서로 완전히 배타적이라고 전제함으로써 둘 사이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미묘하고도 불균등한 변증법”을 통째로 놓쳐버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간단명료한 이분법이 전반적 사회변화의 큰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장점을 가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지구적으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사회 현상들을 양극화시켜 이해하려는 것은 복잡한 현실을 두가지 상반되 는 범주에만 가둬버리는 단순화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두 가지 범주의 타협 가능성, 혹은 그 범주를 넘어서는 제3의 대안을 막아버린다고 비판받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바우만 할배의 이런 이분법이 내게는 아주 마음에 드는 구석이다. 사실 현실 자체의 복잡성이야 딱히 지적하지 않아도 자명한 현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복잡다단한 현실을 모두 고려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수학에서 쓰는 용어로 말하자면 수많은 상수를 어떻게 다 집어넣고 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절대 안 되는 일이다. 복잡하게만 보이는 현실을 헤집고 들어가면 사실 문제는 훨씬 간단한 것이 또한 현실 세계의 자명성이 아닐까 싶다.

개똥 이것도 나쁘고 저것도 나쁘고 다 나쁜 놈인데, 어떻게 한 놈만 팰 수 있겠냐고 하겠지만, 그러나 한 놈만 아작을 내면 의외로 문제는 간단히 풀릴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일단 한 놈을 조지고 봐야 한다. 뎅장. ㅋㅋㅋ